볼품 없는 자신을 사랑해준 "아내" 옛날에 보던 모습과 다르게 보인다?! #곽씨네LP바 EP.3 | tvN 210602 방송
곽승준 #최시원 #강유미 곽씨네 LP바 kwakslpbar EP.3 스페셜 게스트 홍준표 사람에 취하는 {곽씨네LP바} (수) 오후 07:30 tvN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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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o5j 3
2021년 6월 06일 07:53ㅎㅎ홍준표의원님..그렇쿤요..공감~!순정남~💕💕
@Justin-zc9hi 2
2021년 6월 06일 07:49집사람의 말이 의미 심장 하게 들리네 자고로 와이프 말은 무조건 올다. 이번 기회에 색깔 바꿔보는것을 추천 드립니다. 적극 환영해 드리겠습니다.
카리브 1
2021년 6월 06일 15:18권모술수보다는 자기의 소신대로 살아와서 '독고다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검사 시절 그는 상부로부터의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소신 있는 수사를 하여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었다.
홍준표가 정치 입문 때부터 거물급 취급을 받은 것은 드라마 모래시계’ 로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그는 실제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꼴통 검사’였다.
마피아 등 거악들과 비타협적으로 싸웠던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검사에 빗대
한국의 피에트로 검사’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들었다는 점이다.
정계에 입문한 이후에도 계파를 가지지 않고 여러 풍상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좌파로 말을 갈아탄 적이 없는 전형적인 골수 스트롱 우파다.
경남지사로서 수많은 좌파 강성 노조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복마전이었던 진주의료원을 뚝심있게 밀어붙여 결국 폐업시켰으며, 보편적 무상급식 중단(선별적 무상급식 정착), 부채 0 등 많은 성과를 올렸다.
카리브 1
2021년 6월 06일 15:19홍준표 대표님의 파란만장한 삶
홍준표 삶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한 홍준표 지사는 작은 누나가 빚을 낸 7만 원을 손에 쥐고 동대구역에서 야간 열차 편으로 상경한다. 5만6000원의 학비와 1만2000원의 하숙비를 내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고작 2000원에 불과했다. 홍준표 지사는 과외를 하며 서울에서 고학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후 홍준표 지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연수원 14기 수료를 거쳐 검사 생활을 시작한다. 검사 시절에도 그는 자칭 '천민검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검사들이 '광어족' '도다리족'으로 불리며 다음 부임지를 1~6개월 전에 미리 알고 손을 쓸 때, 홍준표 지사는 인사 이튿날 조간 신문을 보고서야 자신의 부임지를 알 정도였다.
광주지검에서는 조직폭력배를 소탕하다가 회칼에 찔릴 뻔한 위기를 넘기기도 했던 홍준표 지사는 이후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며 일약 전국적 인사로 부상했다. '슬롯머신 사건' 수사 당시, 홍준표 지사는 '6공의 황태자'라 불린 박철언 의원을 구속했다. 당시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경(檢警)의 고위 인사들을 대거 연루돼 체포·구속되기도 했다.
드라마 '모래시계' 속의 검사는 이 때의 홍준표 지사를 모델로 한 것이다. 검사를 천직으로 알고 평생 봉직하고 싶었지만 "평검사가 고검장을 잡아넣었는데 상명하복이 생명인 검찰 조직에 계속 있을 수 있겠느냐, 나가달라"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1년 여를 버텼으나 검찰에서는 그에게 사건을 배당해주지 않았다. 검사실에서 '바둑 실력'만 쌓던 시절이 1년, 결국 옷을 벗고 서울에서 변호사를 개업했다. 그러자 광주에서 소탕했던 폭력배들이 변호사사무실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처자까지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 다다르자, 홍준표 지사는 1996년 총선을 통해 정계에 진출한다. 홍준표 지사가 스스로 "까딱하다가는 조폭들에게 낭패를 당하겠더라"며 "정치를 맨 처음에 시작한 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술회했다.
검사로 11년, 정치인으로 26년. 도합 37년 간 그의 삶의 궤적은 계파와 조직에 의존하지 않았던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4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혼자 힘으로 대표최고위원과 원내대표 등 당내 요직에 올랐다. 2012년 19대 총선에 민주통합당 민병두 후보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낙선하자, 그 해 가을에 낙향해 고향에서 열린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행정 역량을 쌓았다.
본래 계파 활동과 거리를 두며 정치했던 터였을까. 이 해 겨울에 치러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친박패권세력이 발호하자 극심한 고초가 덮쳤다.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친박계는 경남 권역의 의원들을 줄세우며 홍준표 지사의 낙천을 시도했다. 그러나 홍준표 지사는 혼자 힘으로 경선을 돌파하며, 도지사 재선 고지에 올랐다.
혼자 힘으로 정치를 해왔지만, 22년 정치 역정이 웅변하듯 '정치적 동지'는 당내외에 널리 포진해 있다.
카리브 1
2021년 6월 06일 15:19홍준표대표님은 평검사 시절에도 권력에 굴하지 않고 그 무시무시한 전두환 친인척들 비리 다 파헤치시고 구속시키고
좌천에 좌천을 거듭하시다 결국 검사복을 벗으신 역사상 다시 없을 모래시계 검사님이셨고
정치 인생 삼십년간 오직 국익과 서민들을 위한 정책들을 발의하시고 한미FTA 강행하셨고 권력층 자녀들의 병역비리를 없애기 위해 국적법도 발의하셨고 채무제로 경남을 실현하셨고 조폭들과 귀족노조 민노총도 때려잡으신 소신과 강단과 정의가 철철 넘치시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