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부정 보다는 긍정쪽이 더 낫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상의 방법은 중도가 최상 입니다. 긍정과 부정 이렇게 두가지 모두다 허망한 현상들의 나툼인것을 알아차리고, 현상은 현상이고, 본질은 본질인것을 알아차리면, 현상과 본질이 하나로 딱붙어서 중도로 연기하고있는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긍정도 현상. 부정도 현상. 현상은 현상일뿐이므로 중도에서 지켜보면 됩니다.
일반중생은 부정 보다는 긍정이 낫긴합니다. 유치원생에게 연기법을 보라고해도, 보지못하니까요. 나쁜꿈 보다는, 좋아보이는꿈이 낫기는 합니다. 어짜피 꿈이지만.
삶속에서 허우적거리는것은 좋고싫음의 분별속에 있는것이고 삶 위에 올라타는 것은 분별없이 긍정도부정도 똑같이 받아들이는 것. 파도를 허용하되 나는 바다이다 알아차리는 것. 내가 삶을 사는게 아니고 삶이 나를 사는것임을 알아차리는 것. 내가아는 어떤것이라도 언제든지 회피로 이용될수있고 끊임없이 숨을 쉬어지는것처럼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야한다는 것. 머리가 아니라 마음의 신호를 주축으로 삼아야 함
에고에 의해 생기는 두 가지가 욕구와 두려움이라고 톨레님은 봤습니다. 이 두가지는 서로 쉽게 전환이 되는데, 예를들면 에고에 근원을 두고 갈구 되어지는 사랑에 대한 욕구는, 사랑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집착)으로 쉽게 바뀐다는 것이죠. 그래서 생각과 동일화 되지말고, 생각하는 사람을 관찰하는자, 혹은 그 생각을 목격하는 자로 남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 상태는 지금 이순간에 의식이 있는 상태와 비숫하고 그 안에는 기쁨, 평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에고에 기반을 둔 의식적인 긍정(욕구)은 그 반대의 부정과 우울함(두려움)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식적인 긍정 상태보다는 생각을 관찰하는 자로 존재하는 상태가 나의 평화와 기쁨을 유지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해석 (생각) 안에서의 일입니다.. 깨달음은 생각( 내 생각) 이란것에서 빠져나오는 일이고 이는 곧 나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나를 벗어나면 " 내 마음" 이라 할것이 없어지기에.. 어떤 다른 무엇이 필요치 않게 됩니다.. 그러면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무엇도 여여한 마음으로 바라볼수 있게 됩니다. 파도의 모양이나 파도의 미추, 잘함과 못함, 분별되는 모든 모습에서 벗어납니다.. 그냥 일어났다 사라지는 파도 일뿐이고, 상상도 못할 바다가 진짜 나임이 실감될뿐 아니라 그렇게 살게 됩니다. 내가 깊은 생각을 해서 또는 깊은 알아차림이나 깊은 삼매를 경험해도 나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먼가 영상중에 써니즈님이 생각으로 정리하거나 이해하려 무던히도 애쓰시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근데 이것은 생각으로 정리할수도 이해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로 옮기면 다 오류가 생길수 밖에 없습니다. 무던히도 애쓰시다 보면.. 문득 " 아하~! 이건 내가 어떻게 할수 있는것이 아니구나."를 절감하실 때가 올겁니다. 그러면 거의 가까이 온것입니다. 한번 체험이 되면 그 다음엔 그전엔 아무리 해도 안되던 것들이 저절로 되는것을 보실수 있게됩니다. 시중에서 돌아다니는 여러 말들은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임시적으로 만들어 놓은 말들입니다. 그래서 말의 내용을 정리해서 이해하는 일을 수없이 반복하면 끝없는 자기모순에 부딪힐수 밖에 없습니다. 멋진 말을 못만나서 그런줄 알고 멋진 말을 맘에 새겨놓으면 또 다른말과 부딪히고 생각으로 정리하려 하면 머가 안 맞고 이렇게 될수 밖에 없습니다. 말이 아니고 생각이 아닌 " 이것"에 한번만 통하면 끝이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모두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우리가 꽃들에 이름을 지어주지만 꽃은 꽃. 이겠지요. 긍정도, 부정도, 기쁨도, 우울도 그저 감정일 뿐입니다. 어느게 좋고 어느게 나쁜건 아닌.. 그저 감정. 우울하고 슬플 때 무의시적으로 이건 나쁜 감정이라는 구별을 하며 나는 이런 안좋은 경험, 느낌은 싫어 혹은 내 인생에서 일어나면 안되.. 등 여러 생각, 판단 등을 하며 본인도 모르게 밀어내죠. 그러면 그럴수록 더 깊게 빠지게 되는데요. 웃음이 날 때, 웃으면 안돼. 라고 생각을 해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에요. 근데도 웃는 건 좋은 것. 이라고 생각, 판단을 하기에 아무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온전하게 웃죠. 근데 만약 우리가 웃는 것, 행복한 것을 나쁜 것으로 규정했다면, 그래서 웃고 싶거나 행복한 순간이 왔을 때 아. 이건 나빠. 이러면 안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거야? 라며 자꾸 도망가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우울한 것, 슬픈 것, 두려운 것 등등 흔히들 우리가 부정적인 것. 이라는 테두리 안에 넣어 놓은 모든 것들. 그것들에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그건 순수한 그 자체이거든요.
같은 물이지만 여름엔 비가되어 내리고, 겨울엔 눈이 되어 내리죠. 비는 좋고 눈은 나쁜거야. 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든 감정은 나로 비롯되어 나타나죠. 누군가 나에게 무려한 말을 해서 내가 화가 났다면 그 무례한 말을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한 말을 “무례하다”라고 규정한 나의 판단과 그 “무례함”이란 것을 “화”로 승화한 나의 몫인 것이죠.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에요.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하는게 이런거겠지요.. 화단에는 한가지의 생명체만 존재할 수 없죠. 꽃, 잡초,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생명체가 함께 공존함으로 그 화단이라는 우주가 완벽하게 존재 하는 것일 텐데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마음도 생각도 다 같은 원리 아닐까요? 진드기는 나쁘니 죽여야 해.라는 것처럼 부정적인 것은 나쁘니 없애야 해. 진드기도 그 화단 안에서는 완벽한 한 존재로 나름의 영역과 역할이 있겠죠. 나름 “부정적” 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둔 감정에도 이유와 역할이 있어, 부정적인 것이 있기에 긍정적인 것도 있는 거잖아요. 잘 생기고 멋지고 성공한 사람만이 친구고, 그렇지 않은 누군가는 친구가 아니야. 라는 식의 편가르기 처럼 어쩌면 굉장히 유치한 놀음에 우리가 빠져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슬픈 일이 생기면 우는 게 당연하죠. 영화를 볼 때는 무조건 웃고 행복해야 해. 라며 슬픈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나려는데.. 아.. 정말 왜 이래.. 울면 안되. 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슬픈 영화 속에도 잔잔히 미소가 번지는 장면이나, 갑자기 팡 터지는 장면이 있을수도 있잖아요. 의식/ 무의식, 내면아이/진아, 참 나아 등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결국 나. 거든요. 근데 자꾸 구별하죠. 이건 무의식이고, 이건 깨어있는 의식이고.. 나의 무의식에 이러이런게 있고, 자꾸 꺼내서 알아주고 느껴주고.. 나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유 해 주고... 그러면 정말 끝임이 없이 자꾸 분리된 무엇인가에서 또 다른게 분리되어 파생되고, 거기서 또 다른게 파생되고.. 무한 반복이에요. 그냥 통으로 “나” 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를 그냥 좀 냅두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뭔가 해보려고 하면 같이 잘 해보려고 하고, 그러다 잘 안되면 그랬구나.. 그럴수도 있지.. 일단은 좀 쉬어.. 이런 친구처럼 내가 나를 대하면 안될까요? 왜 끝임없이 이건 잘난 거, 이건 못한 거, 이건 고쳐야하고.. 저건 저렇게 바꿔야 하고... 끝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힐까요? 그저 조용히 그냥 같이 있어주면 참 고맙고 좋을텐데요. 세상에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면 끝임없이 외로울꺼에요. 하지만 친구가 없어도 내가 나의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렵거나 외롭지 않답니다. 알아차림, 내면 아이 들여다 보기 등등 잠시 내려 놓으시고 일단은 좀 편안한 쉼. 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왠지 많이 지치신 것 같은 느낌에 오지랖 한보따리 풀고 갑니다. 이 댓글 조차도 마음에 닿지 않으시면 쿨~하게 패스 하셔요. 욕이 나오면 한바가지 퍼부셔도 좋구요. ㅎ 늘 응원합니다.
지난날을 보면 내 열등감 자격지심 콤플렉스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감추기위해 마음속은 엄청 요동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척 밝은 척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 게 없지않아 있지만ㅋㅋ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요 정말 찐으로 그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우리 인간의 영원한 실체 참된 "나' 는 자명히 진리로 존재합니다] 그것을 깨달은 이들은 텅빈각성. 밝음. 한 물건. 본래면목.이 뮈꼬. 등으로 동일한 것을 각기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저는 그 상태를 [궁극의 평화]라 표현하며, '나는 죽지 않는다" 는 소리가 나와 "나"에서 함께 울려 퍼져 나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세상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지지만 "나" 는 유일하게 변치 않고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입니다.
[깨달음의 상태는 시간은 사라지고 무한한 공간의 텅 빈 상태입니다] 그것은 오직 지금만 존재하고 은은한 행복감만 있습니다. 어떤 구속도 제약도 없이 자유의 상태에서, 늘 솟아나는 지혜로 빛을 향하고 선행을 실행하며 존재합니다. 모두 다 깨달음에 이를 때, 이 고통. 괴로움의 세상이 끝이 올 것입니다.그러니 그 때가 언제 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우린 그 끝의 날까지 깨달음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궁극의 평화" 속에서 세상의 끝 날까지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깨달음은 오직 사랑의 실천으로 얻습니다] 선행으로 자신 속 어둠을 모두 몰아 내야 합니다. 그것만이 빛과 하나 되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깨달음은 참된사랑 선행하며 경건하고 "올바른" 참선과 명상 해나가면 어둠의 끝에서 끝내 자신의 본질인 빛.성령.불성.양심이 발현 되는 [본래면목]을 자연스럽게 찾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위에는 양심과 선행으로 상당수의 깨달은 이들이 존재 하리라 믿습니다. 깨달음. 긴 시간 앉아서 찾아 오기를 기다림은 가능키 어려운 일 입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잘못 되어 온 이해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모래 한 알 만들지 못합니다. 어둠은 깨달음에 이르는 빛.성령.불성을 발현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존자께서는, 수행자들에게 선행보다는 악과 어둠의 환경에 노출 됨이 큰 속세를 근본적으로 차단키 위해서 불가분 출가를 하도록 하는 조치도 있었습니다. 진리는 모두를 다 아우르는 것이어서 진리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워서 설 하는 이도. 그것을 듣는 이도. 모두에게 불 분명한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누구나 받아 들이고. 누구나 실행하고. 누구나 성취할 수 있어야 진리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성실하게 사랑으로 모든 것을 전 합니다. 하물며, 거룩하신 분께서 세우신 진리는 당신의 자녀을 위해서 오죽 하시겠습니까.진리는 간결 명확한 것. 오직 사랑입니다. 참된 선행으로 자신 안에 모든 어둠을 몰아 내야 그 자체가 깨달음이 돼서 본연의 자신을 찾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랑은 전부입니다. 거룩히 존재하시는 분께서는 사랑이 자비가 모든 사람에게 온 세상에 가득 차기를 바라십니다.
[깨달음에 대해 많은 곳에서 설명이 있으나, 그 전반의 설명이 늘 불분명하고 잘 설명되지 못합니다] 심지어 "참된 나"를 [무상고 무아]라 하여, 그 실재를 부정합니다. 그 논리면 인간은 애초에 존재불능입니다. 존자께서 말씀하신 무상고무아는 무상한 우리 외형의 나. 늘 변하고 사라지는 작은 나를 무상하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깨달음"은 직설적으로 압축 표현하면 "나는 죽지 않는다" 입니다. 이 일곱 자 이외에 그 무엇도 붙지 않습니다. 영원한 나.무한한 나.끝 없이, 등 어떤 표현도 필요치 않습니다. [나는 죽지 않는다]는 그 자체로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 관련하여.. 이제껏 없었던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설명을 신화나. 동화? 정도로 받아들이면 불행한 일입니다. 창세기. 태초에 창조주께서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 하시며, 유독 인간은 흙으로 직접 빗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결을 직접 불어 넣으시니 비로서 인간이 됩니다. 즉. 창조주께서 인간 몸체에 직접 들어 오셔서 인간 근원이 되시니.. 우린 창조주이며 그 분의 분신이며, 자녀가 명확합니다. 그러나 자율성까지 부여 받은 자녀는 창조주의 금지를 거역하여 천국에서 거룩한 나라에서 빛의 나라에서 추방 되었습니다. "궁극의 평화"로 완성된 태초의 자녀는 창조주의 말씀에 거역하여,스스로 악.어둠.거역.거짓 부끄러움. 알며, 그것을 행하는 겉 모습을 갖춘 [나]를 형성합니다. 즉 본연의 "나"와 새로운 겉 모습. [나]가 동시에 공존하게 하는 거역을 행한 것입니다.
즉 유혹의 선악과를 자율로 먹은 것입니다. 이제 완전했던 빛의 자녀가 선과 악이 내.외에 공존하고 그것을 모두 행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외형의 작은 나에게만 완전히 몰입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히도 선이 거역의 악에 싸여서 함께 공존 된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인간사 최초의 사건]입니다. 이제. 본연의 나는. 외면에 새롭게 형성된 또 하나의 작은 나. 새롭게 겉모양을 완전하게 이룬 작은 나. 창조주를 거역한 거짓의 나에 완전히 싸여서 살아 갑니다. 새로운 작은 나는 늘 변하고 이내 사라지고 자체의 생명까지 늙고 사라집니다. 그러니 자신이고 전부라고 믿는 그것에 대해서 늘 무상한 것입니다. 내 것은 아무것도 존재치 않습니다. "무상고무아".입니다. 작은 나의 본질은 거역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것으로서, 모두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변하고 소멸되고 그 원인에 따라 끝없이 윤회 하며 늘 정화 되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무상한 나]는 석가모니존자께서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린 거역의 나를 전부로 한 삶이 아니고, 본래의 "나" 궁극의 평화인 나를 찾아 우리 본연의 "나"로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러면 육신이 생로병사 하든, 다른 차원에서 태어나든, 현생에서 다시 태어나든, 전혀 영향 없이 항상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궁극의 평화로 어느 곳에서 든 늘 본연의 "나" 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끝. 어둠의 끝. 인류 모두가 죄 씻는 날 까지.. 세상의 끝 날까지.. 궁극의 평화로 깨달은 상태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주위의 모든 형제자매에 우리 본 모습의 실제를 알리며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늘 돈오점수입니다.
[참된 사랑. 선행은 본연의 자신을 찾고 궁극의 평화에 드는 깨달음을 위해서 오직.절대적 전제 조건입니다] 선행하는 이에게는 자연스럽게 거룩한 기운이 자신을 인도해 나갑니다. 그것을 현실에서 알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깨달음을 위한 이런 말. 저런 방법. 여러 행동. 대부분 효과 없는 또 하나의 망상만 만듭니다. 어둠을 몰아낸 때가 되어야 진리가 발현합니다. 깨달음은 내 스스로 만들어 성취함이 절대 아닙니다. 어느 곳이든. 언제이든. 오직 "나" 하나 한 글자에 만 몰입 하십시요.근원적으로 내재된 본연의 나를 발현 시켜 나의 본 모습으로 돌아 가는 것입니다. 오직 내 안에 진리가 있습니다. 이 외에 많은 것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더불어 "나"는 오직 참된 사랑과 선행 뿐 입니다. 선행이 없이는 긴 세월을 괴로움 속에 앉아 깨달음을 기다려도 목적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빛.진리와 죄.어둠은 절대 합치 될 수 없습니다. 참된 마음으로 늘 선행 하면 어둠이 모두 사라지고 빛. 진리가 발현됩니다. 깨달음을 얻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는 깨달음은 마음.생각.말.행동에 끊임 없는 참된 선행. 사랑을 실천하며, 깨달음을 바르게 수행해 나가면 누구든 자신의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 자신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방되고 늙음 죽음의 시간도 사라진 오직 지금에서, 은은한 행복감에 존재합니다. 죽음.고통.괴로움을 존재 시킬 그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 오직 은은한 행복감으로만 존재합니다. 이후 깨달은 "나"는 끝없이 솟아나는 지혜로 세상을 여유롭게 살아갑니다. 깨달음. 본연의 "나"를 모두 찾기를 기원 드립니다. 본 채널과 모든 이에 감사드립니다. 프란치스코--
@Consciousness-401 14
2023년 6월 29일 07:31입꼬리를 올리고 😏
어깨를 펴고
허리를 곧게 뻗어라
그러면 내가 인생의 승자가 된다
가장 행복하고 성공했을때의 느낌을
기억하라,,
감정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결국,
몸마저 달라진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고유의 방식은
몸과 마음의 상태,
즉,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언제나 그랬다,,
내 삶을 통제했던 것은
사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습관이였고 태도였고,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그것들이 인과를 만들어 낸다
서원을 세우고 '大義'를 매일같이
새긴 사람은
사사로운 일에 흔들림이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리 많지가 않다
내일도 없고 다음도 없다
그대들이여..!!
부디.. 지금 발심하라,, ⚘
@KNOW-FLEX 9
2023년 6월 29일 10:14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억지로 결심하거나 잘될거라고 위로하는게 아니라, 어떠한 문제를 바라볼때 해결이 된다(긍정)라고 바라보고 해나가는것을 말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빚이 있는데 이 빚을 바라보는 관점이 긍정적이게 바라보는것은 빚을 갚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것이고, 부정적일때는 그 빚에 짖눌려 빚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겠어하고 계속 끌려가는 것인거죠.
긍정적인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런식(문제해결에 초점) 이고 부정적인 사람들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죠.
억지로 다짐이나 결심하는게 아니라 긍정의 방향으로 매사를 생각해야하는거죠.
@nuvovevo9489 9
2023년 6월 29일 07:4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부정 보다는 긍정쪽이 더 낫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상의 방법은 중도가 최상 입니다. 긍정과 부정 이렇게 두가지 모두다 허망한 현상들의 나툼인것을 알아차리고, 현상은 현상이고, 본질은 본질인것을 알아차리면, 현상과 본질이 하나로 딱붙어서 중도로 연기하고있는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긍정도 현상. 부정도 현상.
현상은 현상일뿐이므로 중도에서 지켜보면 됩니다.
일반중생은 부정 보다는 긍정이 낫긴합니다. 유치원생에게 연기법을 보라고해도, 보지못하니까요.
나쁜꿈 보다는, 좋아보이는꿈이 낫기는 합니다. 어짜피 꿈이지만.
@기본적인-r5g 7
2023년 6월 29일 08:55중립적 사고가 가장 현실적입니다
@ask-dad 7
2023년 6월 29일 09:09써니즈님~오늘 내용도 역시나 참 좋네요~🎉
긍정적이라해서 취하고 부정적이라해서 외면하고, 저항하고, 밀어내는 과정들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되는
긍정적, 부정적으로 구분이 필요해서 나누었을 뿐, 그것자체가 좋고 나쁨은 아니었구나
좋은게 좋은게 아닐수도
나쁜게 나쁜게 아닐수도
가까이서 보면 늘 우연같지만,
멀리서 보면 늘 필연적으로 움직이는거 같다고 생각드는 요즘입니다.
불안하면, 답답하면, 화나면~
이게 진짜가 아니야
내 생각이 그렇게 해석한거야라며 떨쳐버리고자 했던 마음들이 보이더라구요
어떤 감정에서도 특히나 부정적이라는 감정속에는 더욱더, 그것을 불러일으킨 나의 욕구(존중,이해,사랑,신뢰, 도움과지지 등)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것들을 이해하고, 인정해주자 그 감정들은 더이상 부정적인것이 아닌 소중한 나의 감정으로 피어나던걸 느꼈습니다.
현존이란 말을 살아있다는 존재감만으로 대했던 과거와는 조금 다르게
요즘은 어떤 감정이 들든 말든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거구나
그 속에 이미 다 존재하는구나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느낌도 조금 다르게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써니즈님의 말씀에 많은 공감을 하며~
오늘도 역시 당신이 최고입니다🎉❤
@annej9240 6
2023년 6월 29일 09:22올라오는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바라보고 .흘려보내고 비우고는 언제쯤이나 될련지~ 붙들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부여잡고 힘들어하고 있는 중생이여라~
@SaintGermain8 5
2023년 6월 29일 07:47삶속에서 허우적거리는것은 좋고싫음의 분별속에 있는것이고 삶 위에 올라타는 것은 분별없이 긍정도부정도 똑같이 받아들이는 것. 파도를 허용하되 나는 바다이다 알아차리는 것. 내가 삶을 사는게 아니고 삶이 나를 사는것임을 알아차리는 것. 내가아는 어떤것이라도 언제든지 회피로 이용될수있고 끊임없이 숨을 쉬어지는것처럼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야한다는 것. 머리가 아니라 마음의 신호를 주축으로 삼아야 함
@miraclevictory 4
2023년 6월 29일 07:02긍정의 힘!!! ^~^
@wbr4bi240 4
2023년 6월 29일 09:23에고에 의해 생기는 두 가지가 욕구와 두려움이라고 톨레님은 봤습니다. 이 두가지는 서로 쉽게 전환이 되는데, 예를들면 에고에 근원을 두고 갈구 되어지는 사랑에 대한 욕구는, 사랑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집착)으로 쉽게 바뀐다는 것이죠. 그래서 생각과 동일화 되지말고, 생각하는 사람을 관찰하는자, 혹은 그 생각을 목격하는 자로 남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 상태는 지금 이순간에 의식이 있는 상태와 비숫하고 그 안에는 기쁨, 평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에고에 기반을 둔 의식적인 긍정(욕구)은 그 반대의 부정과 우울함(두려움)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식적인 긍정 상태보다는 생각을 관찰하는 자로 존재하는 상태가 나의 평화와 기쁨을 유지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suyounkim3507 3
2023년 6월 29일 10:20감사합니다 써니즈님
사랑합니다 ♡♡
@passersby6632 3
2023년 6월 29일 07:23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갖는 것은 참으로 강력하며 우리의 전반적인 웰빙과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긍정과 미신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생각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BELLA_TARO 3
2023년 6월 29일 08:55비 오는 오늘 써니즈님 덕분에 촉촉하게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
@gy3934 3
2023년 6월 29일 08:36잘 들었습니다.
@어설픈사슴 3
2023년 6월 29일 14:04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해석 (생각) 안에서의 일입니다..
깨달음은 생각( 내 생각) 이란것에서 빠져나오는 일이고 이는 곧 나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나를 벗어나면 " 내 마음" 이라 할것이 없어지기에.. 어떤 다른 무엇이 필요치 않게 됩니다..
그러면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무엇도 여여한 마음으로 바라볼수 있게 됩니다. 파도의 모양이나 파도의 미추, 잘함과 못함, 분별되는 모든
모습에서 벗어납니다.. 그냥 일어났다 사라지는 파도 일뿐이고, 상상도 못할 바다가 진짜 나임이 실감될뿐 아니라 그렇게 살게 됩니다.
내가 깊은 생각을 해서 또는 깊은 알아차림이나 깊은 삼매를 경험해도 나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먼가 영상중에 써니즈님이 생각으로 정리하거나
이해하려 무던히도 애쓰시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근데 이것은 생각으로 정리할수도 이해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로 옮기면
다 오류가 생길수 밖에 없습니다. 무던히도 애쓰시다 보면.. 문득 " 아하~! 이건 내가 어떻게 할수 있는것이 아니구나."를 절감하실 때가 올겁니다.
그러면 거의 가까이 온것입니다. 한번 체험이 되면 그 다음엔 그전엔 아무리 해도 안되던 것들이 저절로 되는것을 보실수 있게됩니다.
시중에서 돌아다니는 여러 말들은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임시적으로 만들어 놓은 말들입니다. 그래서 말의 내용을 정리해서 이해하는 일을 수없이 반복하면 끝없는 자기모순에 부딪힐수 밖에 없습니다. 멋진 말을 못만나서 그런줄 알고 멋진 말을 맘에 새겨놓으면 또 다른말과 부딪히고 생각으로 정리하려 하면 머가 안 맞고 이렇게 될수 밖에 없습니다.
말이 아니고 생각이 아닌 " 이것"에 한번만 통하면 끝이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모두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Macrocosmnouveauriche 3
2023년 6월 29일 07:15❤굿모닝 감사합니다
@KNOW-FLEX 3
2023년 6월 29일 10:19부자들은 기회를 본다. 가난한자들은 문젯거리를 본다.부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성장을 본다. 가난한 사람들은 앞으로 다가올 손실을 본다. 부자들은 보상에 집중한다. 가난한 사람은 위험에 집중한다 -하브 에커
결국 가난한자들은 시도하지 못합니다.고로 성공하지도 못하지요.
하지만 부자는 최소한 50%의 확률은 가집니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killingtime8766 3
2023년 6월 29일 10:10우리는 스스로 뿌듯하고 성장한다는 기분을 스스로 느낄때 행복해집니다.성장과 관련 행동을 할 때 행복해집니다.그런데 여기에는 긍정의 힘이 그 과정의 원동력입니다.
저는 이 책을 쓴 저자 스스로가 책을 쓸 때 부정적 본인 감정에 빠져 어떤게 옳은지 갈피를 못 찾고 두 자아가 공존햐 상태에서 책을 쓰신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kacho019 2
2023년 6월 29일 12:26긍정적일 필요가 있나요?
긍정적일 필요가 있다는건
현실이 부정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긍정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 아닐까요?
현실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생각되시나요?
그럼 긍정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이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고
그렇게 생각 되지 않나요?
그럼 긍정적일 필요가 전혀 없지요.
그렇지 않나요?
공덕천 흑암녀 이야기를 아시나요?
공덕천은 좋은 것으로 가득찬 신으로
어떤이의 집에 방문하면
누구든 반기는 신이고
흑암녀는 온갖 안좋은 것으로
가득찬 부정적 신입니다.
공덕천을 받아들이면
흑암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 이야기..
이 둘은 땔래야 땔수 없는 신이기에 그렇다는
이 이야기…어떤가요?
긍정적으로 하려고 하는 계속적인 노력이
결국 부정적인 면도 불러 오더라.
하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 입니다.
긍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는
현실에서 긍정적으로
보려는 불필요한 노력을 하는
어리석음을 항상 알아차리시며
즐겁게 살아가시기들 바랍니당~^^
결국 공덕천도 안받아들이면
흑암녀도 없더라..
좋은게 좋은게 아니고
나쁜게 나쁜게 아니더라.
맞다고 고집하는
자신의 생각을 잘 달래며
가볍게 살아가세용~
@최선연-h1e 2
2023년 6월 29일 08:56감사합니다
@smj8944 2
2023년 6월 29일 08:08채우고 비우고 바라보고 이순간에 집중하다보니 더 가벼워지고 단순해지더이다
그리고는 감사함만이~^^
@미래-r1i 2
2023년 6월 29일 07:29오늘도 감사합니다💛
@Joy-dd9hv 2
2023년 7월 02일 17:31우리가 꽃들에 이름을 지어주지만 꽃은 꽃. 이겠지요.
긍정도, 부정도, 기쁨도, 우울도 그저 감정일 뿐입니다.
어느게 좋고 어느게 나쁜건 아닌.. 그저 감정.
우울하고 슬플 때 무의시적으로 이건 나쁜 감정이라는 구별을 하며 나는 이런 안좋은 경험, 느낌은 싫어 혹은 내 인생에서 일어나면 안되.. 등 여러 생각, 판단 등을 하며 본인도 모르게 밀어내죠. 그러면 그럴수록 더 깊게 빠지게 되는데요.
웃음이 날 때, 웃으면 안돼. 라고 생각을 해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에요.
근데도 웃는 건 좋은 것. 이라고 생각, 판단을 하기에 아무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온전하게 웃죠.
근데 만약 우리가 웃는 것, 행복한 것을 나쁜 것으로 규정했다면, 그래서 웃고 싶거나 행복한 순간이 왔을 때 아. 이건 나빠. 이러면 안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거야? 라며 자꾸 도망가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우울한 것, 슬픈 것, 두려운 것 등등 흔히들 우리가 부정적인 것. 이라는 테두리 안에 넣어 놓은 모든 것들. 그것들에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그건 순수한 그 자체이거든요.
같은 물이지만 여름엔 비가되어 내리고, 겨울엔 눈이 되어 내리죠.
비는 좋고 눈은 나쁜거야. 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든 감정은 나로 비롯되어 나타나죠.
누군가 나에게 무려한 말을 해서 내가 화가 났다면 그 무례한 말을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한 말을 “무례하다”라고 규정한 나의 판단과 그 “무례함”이란 것을 “화”로 승화한 나의 몫인 것이죠.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에요.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하는게 이런거겠지요..
화단에는 한가지의 생명체만 존재할 수 없죠.
꽃, 잡초,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생명체가 함께 공존함으로 그 화단이라는 우주가 완벽하게 존재 하는 것일 텐데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마음도 생각도 다 같은 원리 아닐까요?
진드기는 나쁘니 죽여야 해.라는 것처럼 부정적인 것은 나쁘니 없애야 해.
진드기도 그 화단 안에서는 완벽한 한 존재로 나름의 영역과 역할이 있겠죠.
나름 “부정적” 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둔 감정에도 이유와 역할이 있어, 부정적인 것이 있기에 긍정적인 것도 있는 거잖아요.
잘 생기고 멋지고 성공한 사람만이 친구고, 그렇지 않은 누군가는 친구가 아니야. 라는 식의 편가르기 처럼 어쩌면 굉장히 유치한 놀음에 우리가 빠져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슬픈 일이 생기면 우는 게 당연하죠.
영화를 볼 때는 무조건 웃고 행복해야 해. 라며 슬픈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나려는데.. 아.. 정말 왜 이래.. 울면 안되. 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슬픈 영화 속에도 잔잔히 미소가 번지는 장면이나, 갑자기 팡 터지는 장면이 있을수도 있잖아요.
의식/ 무의식, 내면아이/진아, 참 나아 등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결국 나. 거든요.
근데 자꾸 구별하죠.
이건 무의식이고, 이건 깨어있는 의식이고..
나의 무의식에 이러이런게 있고, 자꾸 꺼내서 알아주고 느껴주고..
나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유 해 주고...
그러면 정말 끝임이 없이 자꾸 분리된 무엇인가에서 또 다른게 분리되어 파생되고, 거기서 또 다른게 파생되고.. 무한 반복이에요.
그냥 통으로 “나” 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를 그냥 좀 냅두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뭔가 해보려고 하면 같이 잘 해보려고 하고, 그러다 잘 안되면 그랬구나.. 그럴수도 있지.. 일단은 좀 쉬어..
이런 친구처럼 내가 나를 대하면 안될까요?
왜 끝임없이 이건 잘난 거, 이건 못한 거, 이건 고쳐야하고.. 저건 저렇게 바꿔야 하고...
끝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힐까요?
그저 조용히 그냥 같이 있어주면 참 고맙고 좋을텐데요.
세상에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면 끝임없이 외로울꺼에요.
하지만 친구가 없어도 내가 나의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렵거나 외롭지 않답니다.
알아차림, 내면 아이 들여다 보기 등등
잠시 내려 놓으시고 일단은 좀 편안한 쉼. 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왠지 많이 지치신 것 같은 느낌에 오지랖 한보따리 풀고 갑니다.
이 댓글 조차도 마음에 닿지 않으시면 쿨~하게 패스 하셔요.
욕이 나오면 한바가지 퍼부셔도 좋구요. ㅎ
늘 응원합니다.
@알명알수 1
2023년 6월 30일 00:17늘 좋은 배움 감사 합니다ㅡㅡ
@빛나라-x9d 1
2023년 6월 29일 12:39지난날을 보면 내 열등감 자격지심 콤플렉스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감추기위해 마음속은 엄청 요동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척 밝은 척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 게 없지않아 있지만ㅋㅋ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요 정말 찐으로 그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해빙투 1
2023년 6월 29일 18:38오늘도 감사합니다.
@츄라이양현우 1
2023년 6월 29일 14:19써니스님 🙏
@바다-t1x1n 1
2023년 6월 30일 02:14써니즈님의 숙고와 마음공부의 여정이 빛의 마음으로 스미는듯 합니다
의미를 부여하는것이 분별하는 마음일듯합니다
마음공부하는 저도 이제야 그무엇도 아무의미가 없음에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건지 긍정도 부정도 그저 웃게 됩니다 꽤 오랜시간 긍정만을 부여잡고 쩔쩔매던 일인으로서 부정적이어도 괜찮다는것이 좋습니다
바이런케이티의 글 중 써니즈님도 읽어주신적 있죠 단하나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사랑받고싶어하지 않기를 인정받고 싶어하지 않기를..
이 글귀가 제 맘에 꽂친뒤 도대체 저 말뜻이 뭔지 저런기도를 하려면 어떤상태여야하는건지 ..
사랑받는게 긍정이고 미움받는게 부정이라면
글귀를 대입해서 긍정적이기를 바라지 않기를이 되겠네요
케이티는 사랑이 필요 없음이 아닌 사랑을 받아도 미음을 받아도 본질은 변함이 없음를 알려주는걸테죠
긍정도 부정도 같은 이치일테고요
결국 우리는 사랑속에서 이 모든걸 경험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늘 써니즈님과 함께 공부하는 모든분들께 ❤
나마스떼
@blayer5029 1
2023년 6월 29일 16:47오늘도 소중한 영상 감사합니다!
@이그림-h3w 1
2023년 6월 29일 13:21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건-t2n 1
2023년 7월 01일 14:00[우리 인간의 영원한 실체 참된 "나' 는 자명히 진리로 존재합니다]
그것을 깨달은 이들은 텅빈각성. 밝음. 한 물건. 본래면목.이 뮈꼬. 등으로 동일한 것을 각기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저는 그 상태를 [궁극의 평화]라 표현하며, '나는 죽지 않는다" 는 소리가 나와 "나"에서 함께 울려 퍼져 나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세상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지지만 "나" 는 유일하게 변치 않고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입니다.
[깨달음의 상태는 시간은 사라지고 무한한 공간의 텅 빈 상태입니다] 그것은 오직 지금만 존재하고 은은한 행복감만 있습니다. 어떤 구속도 제약도 없이 자유의 상태에서, 늘 솟아나는 지혜로 빛을 향하고 선행을 실행하며 존재합니다. 모두 다 깨달음에 이를 때, 이 고통. 괴로움의 세상이 끝이 올 것입니다.그러니 그 때가 언제 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우린 그 끝의 날까지 깨달음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궁극의 평화" 속에서 세상의 끝 날까지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깨달음은 오직 사랑의 실천으로 얻습니다] 선행으로 자신 속 어둠을 모두 몰아 내야 합니다. 그것만이 빛과 하나 되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깨달음은 참된사랑 선행하며 경건하고 "올바른" 참선과 명상 해나가면 어둠의 끝에서 끝내 자신의 본질인 빛.성령.불성.양심이 발현 되는 [본래면목]을 자연스럽게 찾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위에는 양심과 선행으로 상당수의 깨달은 이들이 존재 하리라 믿습니다.
깨달음. 긴 시간 앉아서 찾아 오기를 기다림은 가능키 어려운 일 입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잘못 되어 온 이해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모래 한 알 만들지 못합니다. 어둠은 깨달음에 이르는 빛.성령.불성을 발현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존자께서는, 수행자들에게 선행보다는 악과 어둠의 환경에 노출 됨이 큰 속세를 근본적으로 차단키 위해서 불가분 출가를 하도록 하는 조치도 있었습니다. 진리는 모두를 다 아우르는 것이어서 진리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워서 설 하는 이도. 그것을 듣는 이도. 모두에게 불 분명한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누구나 받아 들이고. 누구나 실행하고. 누구나 성취할 수 있어야 진리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성실하게 사랑으로 모든 것을 전 합니다. 하물며, 거룩하신 분께서 세우신 진리는 당신의 자녀을 위해서 오죽 하시겠습니까.진리는 간결 명확한 것. 오직 사랑입니다. 참된 선행으로 자신 안에 모든 어둠을 몰아 내야 그 자체가 깨달음이 돼서 본연의 자신을 찾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랑은 전부입니다. 거룩히 존재하시는 분께서는 사랑이 자비가 모든 사람에게 온 세상에 가득 차기를 바라십니다.
[깨달음에 대해 많은 곳에서 설명이 있으나, 그 전반의 설명이 늘 불분명하고 잘 설명되지 못합니다]
심지어 "참된 나"를 [무상고 무아]라 하여, 그 실재를 부정합니다. 그 논리면 인간은 애초에 존재불능입니다.
존자께서 말씀하신 무상고무아는 무상한 우리 외형의 나. 늘 변하고 사라지는 작은 나를 무상하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깨달음"은 직설적으로 압축 표현하면 "나는 죽지 않는다" 입니다. 이 일곱 자 이외에 그 무엇도 붙지 않습니다.
영원한 나.무한한 나.끝 없이, 등 어떤 표현도 필요치 않습니다. [나는 죽지 않는다]는 그 자체로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 관련하여.. 이제껏 없었던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설명을 신화나. 동화? 정도로 받아들이면 불행한 일입니다.
창세기. 태초에 창조주께서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 하시며, 유독 인간은 흙으로 직접 빗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결을 직접 불어 넣으시니 비로서 인간이 됩니다. 즉. 창조주께서 인간 몸체에 직접 들어 오셔서 인간 근원이 되시니.. 우린 창조주이며 그 분의 분신이며, 자녀가 명확합니다. 그러나 자율성까지 부여 받은 자녀는 창조주의 금지를 거역하여 천국에서 거룩한 나라에서 빛의 나라에서 추방 되었습니다.
"궁극의 평화"로 완성된 태초의 자녀는 창조주의 말씀에 거역하여,스스로 악.어둠.거역.거짓 부끄러움. 알며, 그것을 행하는 겉 모습을 갖춘 [나]를 형성합니다. 즉 본연의 "나"와 새로운 겉 모습. [나]가 동시에 공존하게 하는 거역을 행한 것입니다.
즉 유혹의 선악과를 자율로 먹은 것입니다. 이제 완전했던 빛의 자녀가 선과 악이 내.외에 공존하고 그것을 모두 행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외형의 작은 나에게만 완전히 몰입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히도 선이 거역의 악에 싸여서 함께 공존 된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인간사 최초의 사건]입니다.
이제. 본연의 나는. 외면에 새롭게 형성된 또 하나의 작은 나. 새롭게 겉모양을 완전하게 이룬 작은 나. 창조주를 거역한 거짓의 나에 완전히 싸여서 살아 갑니다. 새로운 작은 나는 늘 변하고 이내 사라지고 자체의 생명까지 늙고 사라집니다. 그러니 자신이고 전부라고 믿는 그것에 대해서 늘 무상한 것입니다. 내 것은 아무것도 존재치 않습니다. "무상고무아".입니다.
작은 나의 본질은 거역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것으로서, 모두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변하고 소멸되고 그 원인에 따라 끝없이 윤회 하며 늘 정화 되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무상한 나]는 석가모니존자께서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린 거역의 나를 전부로 한 삶이 아니고, 본래의 "나" 궁극의 평화인 나를 찾아 우리 본연의 "나"로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러면 육신이 생로병사 하든, 다른 차원에서 태어나든, 현생에서 다시 태어나든, 전혀 영향 없이 항상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궁극의 평화로 어느 곳에서 든 늘 본연의 "나" 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끝. 어둠의 끝. 인류 모두가 죄 씻는 날 까지.. 세상의 끝 날까지.. 궁극의 평화로 깨달은 상태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주위의 모든 형제자매에 우리 본 모습의 실제를 알리며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늘 돈오점수입니다.
[참된 사랑. 선행은 본연의 자신을 찾고 궁극의 평화에 드는 깨달음을 위해서 오직.절대적 전제 조건입니다]
선행하는 이에게는 자연스럽게 거룩한 기운이 자신을 인도해 나갑니다. 그것을 현실에서 알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깨달음을 위한 이런 말. 저런 방법. 여러 행동. 대부분 효과 없는 또 하나의 망상만 만듭니다. 어둠을 몰아낸 때가 되어야 진리가 발현합니다. 깨달음은 내 스스로 만들어 성취함이 절대 아닙니다. 어느 곳이든. 언제이든. 오직 "나" 하나 한 글자에 만 몰입 하십시요.근원적으로 내재된 본연의 나를 발현 시켜 나의 본 모습으로 돌아 가는 것입니다. 오직 내 안에 진리가 있습니다. 이 외에 많은 것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더불어 "나"는 오직 참된 사랑과 선행 뿐 입니다.
선행이 없이는 긴 세월을 괴로움 속에 앉아 깨달음을 기다려도 목적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빛.진리와 죄.어둠은 절대 합치 될 수 없습니다. 참된 마음으로 늘 선행 하면 어둠이 모두 사라지고 빛. 진리가 발현됩니다. 깨달음을 얻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는 깨달음은 마음.생각.말.행동에 끊임 없는 참된 선행. 사랑을 실천하며, 깨달음을 바르게 수행해 나가면 누구든 자신의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 자신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방되고 늙음 죽음의 시간도 사라진 오직 지금에서, 은은한 행복감에 존재합니다. 죽음.고통.괴로움을 존재 시킬 그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 오직 은은한 행복감으로만 존재합니다. 이후 깨달은 "나"는 끝없이 솟아나는 지혜로 세상을 여유롭게 살아갑니다. 깨달음. 본연의 "나"를 모두 찾기를 기원 드립니다. 본 채널과 모든 이에 감사드립니다. 프란치스코--
@minho_kim 1
2023년 6월 29일 20:04중도적 사고가 중요합니다.
@유령회원-i5k
2023년 8월 31일 11:53와...한마디 한마디 다 공감하면서 너무 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