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곧 50십인데요ᆢ지난날에 이래 저래 살아 보았는데요ᆢ저는 참 삶의 의미는 내자신을 작게 기본 앞가림 하고 주위를 둘러보고 나보다 더 작은 앞가림도 못 하는 사람을 돕고 사는게 내 마음에서 뿌듯한 힘이 나는 것 같아서요ᆢ일단 내 기본 작은 앞가림을 먼저 하시고 주위를 둘러 보세요ㆍ봉사를 하시면 마음에서 뿌듯한 힘이 만들어 집니다 ㆍ ㅡ오늘도 스님과질문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ㆍ~~^^
다른사람들에게 많이 베푸는 것을 실천하고 삽니다. 어느정도 베풀어야 할지.. 특별한 삶의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뭘까요? 사는데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어서 사는 건 아니다. 왜 사느냐 하면 그냥 산다. 다만, 어차피 살 것인데 어떻게 살 것이냐? 즐겁게 살 것이냐 괴롭게 살 것이냐? 그것이 핵심이다.
수준이 낮을수록 육체적 즐거움에 집착할려고 하고 수준이 높아질수록 영적인 사랑의 즐거움을 누린다 봅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의 균형잡힌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갈 길을 찾은 자가 드무니 눈앞에 즐거움을 따르면서 진정한 즐거움을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2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2004년.제가 21살. 동생이 19살이었을때, 동생이 갑자기 신장암 판정을 받고 6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이후 제 삶이 힘들고 허무하며 왜 사나? 라는 생각이 들때 죽은 동생을 생각하며, 내가 동생몫 까지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까 왜 사나라는 생각은 그만하고 주어지는데로 삶이 펼쳐지는데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상을 보니 공감이 많이 되고 왜 사나? 에 답을 얻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이런 강의를 듣다가 막 강사님들 나오셔서 50도 안 늦었다 도전하라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냥 쳇바퀴 도는 내 삶이 맞는 건가... 열정 가득했던 10대 20대를 지나 모진 풍파를 겪는 30대가 오니 내가 왜 이렇게 전전긍긍하면서 살지? 사는 게 지옥인가? 죽는 게 지옥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 이렇게 예쁘게 태어나 써먹지도 못하고 사는 삶이 안타까우면서도 사람이 너무 귀찮고 싫고... 도저히 알 수 없는 인생입니다. 돈도 열심히 버는데도 쓸 줄도 모르고 좋은 재능이 있는데도 나서기가 두렵고... 사는 게 귀찮고 의미가 없고 그저 키우는 강아지 죽을 때 나도 죽고 싶다란 생각이 들어요 집도 있고 외제차도 있고 고연봉이여도 그냥 사는 게 의미가 없어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전 사람이 귀찮아요 알고 싶지도 않고 흥미도 없어요 사랑도 많이 받아 봐서 그냥 옛 기억으로 살면 되고 나이 들어서 아는 사람들은 너무 약았어요 자신의 실리를 먼저 찾으려는 속셈이 보이면 가던 맘도 되돌아 와요 그래서 혼자가 편한데 이렇게 혼자 사는 삶이 의미가 있나요??? 돈은 벌어서 뭐하고 외모는 가꿔서 뭣하며... 진짜 살아 내는 게 귀찮습니다ㅜ
스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삶에는 본래 이유가 없으며, 인간은 그저 살아간다”는 선언은 단순하면서도 매혹적인 듯 보였습니다. 삶을 덜 무겁게 만들고, 괴로움을 덜어주는 위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오늘, 그 말씀이 갖고 있는 실존적 공허와 철학적 허상, 그리고 복음이 그것을 어떻게 뚫고 들어오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스님, 스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왜 사느냐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그냥 산다.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산다는 사실이 먼저 있고, 이유는 나중이다.”
이 말은 언뜻 들으면 겸허한 현실 인식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인간의 가장 깊은 질문을 ‘무효’ 선언하는 것이며, 존재의 신비 앞에서 입을 닫으라는 침묵 강요입니다.
그러나 스님,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밥을 먹기 위해서만 사는 존재가 아니고, 단지 욕망을 조절하며 유연하게 살아가는 실용적 기계도 아닙니다. 우리는 고통 앞에서 “왜?”라고 묻고, 사랑 앞에서 “어떻게?”를 묻고, 죽음 앞에서 “무엇이 진실인가?”를 묻는 존재입니다.
스님의 말처럼 “그냥 산다”는 말이 전부라면,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은 왜 절망 속에서도 시를 썼고,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은 왜 수치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외쳤을까요?
이 질문들 속엔, “존재의 이유”를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영혼의 떨림이 있습니다.
1. “삶에는 이유가 없다”는 말의 세 가지 철학적 허상
(1) 존재론적 공백 ―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제거될 수 없다
법륜스님은 강의에서 “삶에는 본래 이유가 없다”고 하시며, “먼저 존재하고, 나중에 의미를 붙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존재는 우연하고, 의미는 인간이 나중에 선택해서 부여하는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깊은 존재론적 허상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존재한다”는 말 자체가 이미 어떤 이유 또는 조건 없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존재든 그것이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다음 질문을 불러옵니다:
“왜 그것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적 구조에 관한 물음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눈앞에 갑자기 사과 하나를 놓여 있는 걸 본다면, 당연히 이렇게 묻습니다:
“이 사과는 어디서 왔지?” “누가 여기다 두었나?”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닐까?”
존재는 원인과 목적을 불러옵니다. 심지어 불교의 연기론도 모든 존재는 어떤 ‘연(緣)’으로 생긴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무의미한 존재란 철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허상입니다.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유치한 욕망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인간 안에 새겨놓은 존엄한 질문의 DNA입니다. 이 질문이 없다면,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라, 본능으로만 사는 동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2) 도덕의 상대화 ― 기준 없는 윤리는 무정부 상태를 낳는다
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각자 정하는 것이고, 어떻게 사는지도 각자 선택하는 것이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관용과 자유를 강조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논리를 끝까지 일관되게 밀고 나가면, 한 가지 매우 위험한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도덕의 붕괴입니다.
만약 “삶의 의미와 방식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라면,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예수가 자신을 희생한 것도, 단지 각자의 선택과 기준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입니까?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나는 약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내 인생의 의미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스님의 논리라면, 아니요.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기준대로 살고 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세상은 도덕적 무정부 상태(anarchy)에 돌입하게 됩니다. 어떤 보편적 기준도 없기 때문에, 정의는 사라지고, 힘 있는 자의 선택만이 세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25) —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 혼돈의 사회를 묘사하는 문장입니다.
삶의 의미와 도덕이 절대적으로 상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적 토대입니다.
(3) 사랑의 붕괴 ― 진짜 사랑은 자기기준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헌신이다
스님의 논리에서 가장 깊은 슬픔은, 결국 사랑조차 자기중심으로 환원된다는 것입니다.
스님은 “우리는 의미를 만들고, 그것을 바꾸거나 버릴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논리를 따르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단지 내 감정이고, 내가 그 사랑을 그만두는 것도 내 자유입니다.
이런 논리는 처음엔 자유롭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끝에 가면 사랑은 계약처럼 가볍고, 조건처럼 무너지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사랑은 고통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계속 선택하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때로 눈물로, 손해로, 침묵으로, 십자가로 드러납니다.
누가 자녀를 사랑하면서 ‘의미가 없으니 그만두자’고 말합니까? 누가 치매 걸린 부모를 돌보며 ‘이건 내 기쁨이 아니니 내려놓자’고 합니까?
사랑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선 어떤 진리로부터 흘러오는 것입니다.
그 진리는 십자가에서 절정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는 아무 이득도, 아무 보상도 없이 우리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이 사랑만이, 세상의 모든 ‘이유 없음’을 이기고, 모든 공허함을 덮으며, 모든 존재를 새롭게 창조하는 이유가 됩니다.
2. “그냥 산다”는 말이 무너지는 자리 ― 십자가
스님, 기독교는 말합니다.
“우리는 이유 없이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삽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가장 극단적 현현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유 없이 죽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은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피 묻은 손으로 대답한 사건입니다.
“너는 네가 유용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내가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 이것이 십자가가 말하는 존재론입니다.
“그냥 산다”는 말이 주는 가벼움은 현실 도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가 도피할 수 없는 현실, 즉 고통과 죽음, 죄와 부정의 현실 속으로 스스로 들어오신 하나님입니다.
3. 인간이 만든 의미는 인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의미는 내가 정하고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 의미가 바뀔 수도 있고, 없어도 된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스스로 만든 의미가, 스스로 무너질 때, 인간은 어디로 가야하는 겁니까?”
내가 만든 의미는 나보다 약합니다. 내가 흔들리면 그 의미도 흔들립니다. 내가 좌절하면 그 의미도 붕괴됩니다. 결국 “내가 의미다”라는 말은, 존재의 무게를 허약한 자아 위에 얹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지붕을 거품 위에 세우는 일과 같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말합니다:
“너의 의미는 너 안에 있지 않다. 너의 의미는 너를 위해 울고, 피 흘리고, 죽고, 다시 살아난 그분 안에 있다.” (요한복음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센도아빠 71
2020년 5월 23일 1:06 오후왜사나? 의문을가지고 궁극적으로 파고들면 존재의 의미를 못찾기에 자살을 선택한다 들었어요. 그냥 존재하기에 살아가는것이다 라는 단순진리를 왜곡한거죠
@jiseongtaephemi 51
2020년 5월 23일 1:24 오후현재의 삶이 좋은 줄 아는게 수행이다.
괴로워하는 사람은 괴로워하도록 놔두자.
자기가 괴롭고 싶어서 괴로운 것!
Ozaki Yutaka 50
2020년 5월 23일 1:04 오후법륜스님은 위선 가식 이런게 전혀 없으셔서 정말 좋습니다
@아싸조아-y9c 40
2020년 5월 23일 1:10 오후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사는데 의미가 있던 없던 그냥 내 멋대로 살면 된다.....
@지니-m7r 38
2020년 5월 23일 1:25 오후스님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mactankorea 30
2020년 5월 23일 4:25 오후스님을 만난 것이 제 인생 최고의 축복입니다.
감사합니다..
@----5004 29
2020년 5월 23일 1:26 오후안녕하세요 ~~저는 곧 50십인데요ᆢ지난날에 이래 저래 살아 보았는데요ᆢ저는 참 삶의 의미는 내자신을 작게 기본 앞가림 하고 주위를 둘러보고 나보다 더 작은 앞가림도 못 하는 사람을 돕고 사는게 내 마음에서 뿌듯한 힘이 나는 것 같아서요ᆢ일단 내 기본 작은 앞가림을 먼저 하시고 주위를 둘러 보세요ㆍ봉사를 하시면 마음에서 뿌듯한 힘이 만들어 집니다 ㆍ ㅡ오늘도 스님과질문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ㆍ~~^^
@특전사돌삐 27
2020년 5월 23일 1:10 오후다람쥐도 배고프니까 도토리 주워러갑니다.
내일 지구가 망한다해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 왜?
그냥~
@기타치는한의사 21
2020년 5월 23일 6:43 오후법륜 스님 말씀 들으면 실존주의도 쇼펜하우어 사상도 에리히 프롬도 다 있습니다 들을 수록 와닿고 좋네요 감사합니다 ^^
@mindgardening4928 19
2020년 5월 23일 1:04 오후다른사람들에게 많이 베푸는 것을 실천하고 삽니다. 어느정도 베풀어야 할지.. 특별한 삶의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뭘까요?
사는데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어서 사는 건 아니다. 왜 사느냐 하면 그냥 산다. 다만, 어차피 살 것인데 어떻게 살 것이냐? 즐겁게 살 것이냐 괴롭게 살 것이냐?
그것이 핵심이다.
鄭載勳 16
2020년 5월 23일 1:39 오후수준이 낮을수록 육체적 즐거움에 집착할려고 하고
수준이 높아질수록 영적인 사랑의 즐거움을 누린다 봅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의
균형잡힌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갈 길을 찾은 자가 드무니
눈앞에 즐거움을 따르면서
진정한 즐거움을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은영-r3u 15
2020년 5월 23일 1:05 오후답. 그냥살면된다.그리고 즐겁게~~네^^
@오승택-y3j 10
2020년 5월 23일 1:02 오후안봤는데 스님 말씀은 그냥 산다고 하실거에요
@moorayng9196 9
2020년 5월 23일 1:23 오후좋은말씀
감사합니다
@도담TV 8
2020년 5월 23일 1:03 오후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이네요~^^
좋은 말씀 감사 합니다~^^
@lunakim1004 8
2020년 5월 23일 6:40 오후저는 스님이 너무 좋고 존경스럽습니다! 질문자도 감사합니다. 이런 질문 해주셔서!
@chomiart1359 7
2020년 5월 23일 1:31 오후왜 사느냐
이유는 없네요
이유가 있다면
사는 게 더 힘들 수도~
그냥 살아도 되니 오히려 자유롭습니다 ㅎㅎ
늘 감사 감사드립니다♡
꽃길 7
2020년 5월 23일 1:19 오후존경하는 법륜스님 감사합니다🙏
@mindrhapsody 7
2020년 5월 23일 1:53 오후지금 이순간 은혜롭고 온전한 존재를 느껴봅니다!
@seo_young_tv 5
2020년 5월 23일 1:26 오후그러네요
그냥사는거 맞네요 스님^^~♡
또 깨닫게하시네요
베풀고사는삶을 살께요
저는
EM PTY 5
2020년 5월 23일 2:19 오후Why의 해답: empty...
'왜'라는 의문은 집착에서 비롯된 것.
인간의 '인지 능력'의 양면:
인류 전체에게는 문명을 주었고, 과학을 주었고, 편의를 주었고, 위생청결을 주었고 인류 전체의 존속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개인 하나하나에게는 부정본능을 소유하도록 만드는 끝없는 굴레의 속박이다. 이 굴레, 즉 윤회를 벗어난 해탈의 길로 정진하자. 오늘도 Just
너랑나랑은 5
2020년 5월 23일 1:06 오후즐겁게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해야할일이 많다 많아 으윽~
@박상현-c9n 5
2020년 5월 23일 5:05 오후태어나서니까.
열심히 사세요.
사람으로 태어나는것도.
복이랍니다.
법륜스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김띨띨 5
2020년 5월 23일 2:24 오후아이고 아저씨 ㅎ 중2병도 아니고ㅎㅎ
태어난김에 사는거지
@leeseunghyeok1798 4
2020년 5월 23일 2:05 오후모태신앙인데 저기 가고 싶네
@왕십리12번출구 3
2020년 5월 24일 3:03 오전스님 감기에 걸리신건가요?? ㅠ
아프지마세요
@r0ver 3
2020년 5월 27일 2:20 오후개인적으로 법륜 스님 영상을 길게 틀어놓고 보는걸 좋아해서 또 짧은 영상이야? 하고 들어왔는데 안봤으면 손해볼 뻔.. 짧지만 큰 깨닳음 얻고갑니다.
@진짜댓글재미없다 3
2022년 9월 21일 1:26 오전이 짧은 영상이 저를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네요 늘 행복하세요
공공갈매기 3
2020년 5월 23일 2:24 오후스님 말에 복종하는게 중요함..
@황성숙-p5z 3
2020년 7월 21일 8:47 오전멋진스님.확실하고긍정적으로풀이하시는스님의말씀에큰~박수를보냅니다~
@장수정-b8f 3
2021년 6월 16일 5:28 오후네 근데 삶이 재미없고 힘들고 장점이 하나 없는데 왜 살까요
@이기자-f3w 3
2020년 5월 23일 1:20 오후스님건강하세요
@성은진-y5o 2
2023년 1월 27일 1:53 오후스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박혜정-y5v 2
2020년 9월 17일 12:04 오전저는 2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2004년.제가 21살. 동생이 19살이었을때, 동생이 갑자기 신장암 판정을 받고 6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이후 제 삶이 힘들고 허무하며 왜 사나? 라는 생각이 들때 죽은 동생을 생각하며, 내가 동생몫 까지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까 왜 사나라는 생각은 그만하고 주어지는데로 삶이 펼쳐지는데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상을 보니 공감이 많이 되고 왜 사나? 에 답을 얻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zenfi-v4 2
2024년 4월 23일 12:20 오후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일어나는 사건들과 만나는 인연들이
한 생각 차이로 지옥 같은 고통도 되고
기적 같은 선물도 되는 것을 법륜 스님께 배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유미화-z2y 1
2020년 5월 30일 1:13 오전스님 감사합니다 오는도 스님벞문에 큰 힘을 얻어습니다🙏
@이우철-n4q 1
2020년 5월 23일 4:21 오후감사합니다
양규선 1
2020년 5월 24일 10:11 오후아이구 스님 감기;;
율비 1
2020년 5월 23일 4:26 오후질문 ㅆㅎㅌㅊ
최흥락 1
2020년 5월 23일 4:15 오후크리스찬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불자는 공덕을 쌓아 열반에 오르기위해 사는것이라 배웠습니다
Chris Brown 1
2020년 5월 23일 2:31 오후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계속 파고 또 파다보면 결국 태어났으니까 사는거다란 결론이 나옵니다
003nirvana 1
2020년 5월 25일 12:49 오전태어나지 않는게 가장좋고,
태어났다면 괴롭지 않은게 좋다.
태어남은 내가 선택할수 없지만,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은 내가 선택할수 있다.
그저 무심한 마음으로 무심히 바라볼뿐...
잇뽕에보낸다 1
2020년 5월 28일 4:35 오후왜 사는가 살인마가되면 사람 죽이기위해산다그러고 봉사자가 되면 남을 돕기위해 사는게 되듯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왜 사느냐가 결정된다
Jeff 1
2020년 5월 24일 7:20 오전이분
완벽한 사회주의 자라고 많은 분들이 알고 있었는데ㅐ
난 알 수 가 없네
배고파 1
2020년 5월 24일 3:20 오전0:36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나자신한테 끊임 없이 묻고 또 물었는데 답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거였더라고요
@1232-w
2020년 5월 23일 7:13 오후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 두개의 차이점도 구분 못했다는건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바르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그냥-z3j
2020년 9월 16일 12:13 오후그냥 산다. 이왕이면 즐겁게 산다. 고맙습니다. 스님~
@hanja6501
2020년 5월 23일 11:46 오후살아지니 사는거같습니다
춘식이
2020년 5월 23일 5:24 오후남에게 피해주지않는 선에서 나 좋은대로 자유롭게 사는것
백지훈
2021년 2월 19일 5:10 오후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정계인
2020년 11월 13일 11:59 오후감사합니다 스님
@비행기-i8w
2021년 2월 15일 10:53 오전왜 사냐, 그냥 산다 이게 답이다 존재가 먼저이다 감사합니다 스님
배호성
2020년 5월 27일 6:48 오후인생은 GTA5
h soul
2020년 5월 23일 11:53 오후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The K
2020년 5월 24일 3:01 오후저는 생각이 좀 다른데..
저 질문하신 분은 “왜”를 물었는데, 질문이 가치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떻게”에 대한 답만 해주신 것 같아, 제 식견이 부족해서인지 아쉽습니다.
“왜”에 대한 답이 있어야, “어떻게”에 대해 궁금해하고, 탐구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존재의 이유를 모르고 살아간다면 그 자체로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저는 스님께서 중간중간 “아시겠어요?”라고 하시는 말씀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Nesso
2020년 6월 10일 12:15 오전현명하십니다
@더디덩
2022년 1월 4일 12:03 오전와.. 존경합니다
@박희경-j8m
2020년 6월 2일 1:01 오후법륜스님 고맙습니다
박효병
2020년 12월 6일 10:14 오후그냥 사는게 어딨어요 뭔가 할일이 있으니 사는거지요 그 일이 뭔가를 몰라서 행하지 못 할 뿐이지요 그냥 사는건 아니지요
@운곡기문둔갑
2022년 7월 17일 8:44 오전베푸는 것 받으면서 살고 싶다면
그렇게 살면 된다고 하신 부분은 옳지 않는 말,
그렇게 살려면 그러한 업을 지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말의 귀재 법륜스님의 다양한 답변에는 이치 모순적 말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jayj7143
2023년 4월 7일 2:39 오전감사합니다 어떻게 사는 게 더 즐거운가
@제니-e9k
2024년 3월 5일 1:49 오후이런 강의를 듣다가 막 강사님들 나오셔서 50도 안 늦었다 도전하라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냥 쳇바퀴 도는 내 삶이 맞는 건가... 열정 가득했던 10대 20대를 지나 모진 풍파를 겪는 30대가 오니 내가 왜 이렇게 전전긍긍하면서 살지? 사는 게 지옥인가? 죽는 게 지옥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
이렇게 예쁘게 태어나 써먹지도 못하고 사는 삶이 안타까우면서도 사람이 너무 귀찮고 싫고...
도저히 알 수 없는 인생입니다. 돈도 열심히 버는데도 쓸 줄도 모르고 좋은 재능이 있는데도 나서기가 두렵고... 사는 게 귀찮고 의미가 없고 그저 키우는 강아지 죽을 때 나도 죽고 싶다란 생각이 들어요 집도 있고 외제차도 있고 고연봉이여도 그냥 사는 게 의미가 없어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전 사람이 귀찮아요 알고 싶지도 않고 흥미도 없어요
사랑도 많이 받아 봐서 그냥 옛 기억으로 살면 되고 나이 들어서 아는 사람들은 너무 약았어요
자신의 실리를 먼저 찾으려는 속셈이 보이면 가던 맘도 되돌아 와요
그래서 혼자가 편한데 이렇게 혼자 사는 삶이 의미가 있나요??? 돈은 벌어서 뭐하고 외모는 가꿔서 뭣하며... 진짜 살아 내는 게 귀찮습니다ㅜ
차민성
2020년 5월 23일 5:56 오후다람쥐도 잘 사는데 왜 사람이 못 살아요??
@갈뽀Tv
2024년 6월 25일 2:33 오후❤ 너는 왜사는것인가?..... 태어낫으니까요오오오오 ㅠㅠㅠ
@davecheon1894
2024년 6월 6일 12:19 오전돈 적절하게 있고 건강하면 최고
최ᅵ추이구수리리
2020년 5월 24일 12:44 오전ㄱㅅ
bell lu
2020년 5월 24일 3:09 오전스님 건강하시면 좋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Totoro
2020년 5월 25일 8:40 오후역시 진실은 심플하군요
@박희경-j8m
2020년 6월 2일 1:02 오후스님 늘 존경합니다
이숙
2020년 5월 23일 10:35 오후스님. 항상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심쿵두루
2022년 4월 17일 12:47 오전진짜 명답입니다!
@현모-g7m
2022년 3월 18일 2:44 오후바른 관점 잡아주셔 감사합니다.
김진희
2022년 3월 6일 11:15 오전법륜스님의 행복학교 추천합니다. 행복학교 프로그램 꼭 참가해보시고 앞으로의 삶이 가볍고 행복해지시기를요^^^
@sabosi1667
2020년 5월 24일 11:13 오전감사합니다 🙏🏻
@zoeshkim
2025년 12월 7일 1:13 오전왜 사는 지에 대한 답은 도저히 없죠... 우리는 그럼에도 의미를 만들어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_^
@정솜결
2020년 5월 25일 6:33 오전감사합니다ㆍ솜결
@유종철-d2m
2020년 5월 24일 6:45 오전스님짱!
jo han
2020년 5월 23일 4:44 오후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근데 영상촬영은 언제 한것인가요? 마스크도 안쓰고 사람들끼리 모여있는걸 보면 20년도 이전에 촬영된 거 같은데 촬영을 언제 했는지 알려주시면 논란이 안생길것같습니다.
@도토리사냥꾼V
2021년 7월 10일 4:12 오전감사합니다...
@koonj2921
2024년 8월 26일 6:02 오후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 그려러면 나 자신을 사랑해야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겠네요그래야 내가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것인가보네요 깨달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봄이-p1g
2020년 5월 23일 8:24 오후최고의답이십니다 업대로 살고 업대로 살다가 가라는 말씀이십니다
@생명전도사
2025년 7월 19일 1:20 오후“삶에는 이유가 없다”는 말 앞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본다
존경하는 법륜스님께,
스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삶에는 본래 이유가 없으며, 인간은 그저 살아간다”는 선언은 단순하면서도 매혹적인 듯 보였습니다. 삶을 덜 무겁게 만들고, 괴로움을 덜어주는 위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오늘, 그 말씀이 갖고 있는 실존적 공허와 철학적 허상, 그리고 복음이 그것을 어떻게 뚫고 들어오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스님, 스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왜 사느냐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그냥 산다.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산다는 사실이 먼저 있고, 이유는 나중이다.”
이 말은 언뜻 들으면 겸허한 현실 인식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인간의 가장 깊은 질문을 ‘무효’ 선언하는 것이며, 존재의 신비 앞에서 입을 닫으라는 침묵 강요입니다.
그러나 스님,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밥을 먹기 위해서만 사는 존재가 아니고, 단지 욕망을 조절하며 유연하게 살아가는 실용적 기계도 아닙니다. 우리는 고통 앞에서 “왜?”라고 묻고, 사랑 앞에서 “어떻게?”를 묻고, 죽음 앞에서 “무엇이 진실인가?”를 묻는 존재입니다.
스님의 말처럼 “그냥 산다”는 말이 전부라면,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은 왜 절망 속에서도 시를 썼고,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은 왜 수치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외쳤을까요?
이 질문들 속엔, “존재의 이유”를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영혼의 떨림이 있습니다.
1. “삶에는 이유가 없다”는 말의 세 가지 철학적 허상
(1) 존재론적 공백 ―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제거될 수 없다
법륜스님은 강의에서 “삶에는 본래 이유가 없다”고 하시며, “먼저 존재하고, 나중에 의미를 붙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존재는 우연하고, 의미는 인간이 나중에 선택해서 부여하는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깊은 존재론적 허상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존재한다”는 말 자체가 이미 어떤 이유 또는 조건 없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존재든 그것이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다음 질문을 불러옵니다:
“왜 그것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적 구조에 관한 물음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눈앞에 갑자기 사과 하나를 놓여 있는 걸 본다면, 당연히 이렇게 묻습니다:
“이 사과는 어디서 왔지?”
“누가 여기다 두었나?”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닐까?”
존재는 원인과 목적을 불러옵니다.
심지어 불교의 연기론도 모든 존재는 어떤 ‘연(緣)’으로 생긴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무의미한 존재란 철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허상입니다.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유치한 욕망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인간 안에 새겨놓은 존엄한 질문의 DNA입니다.
이 질문이 없다면,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라, 본능으로만 사는 동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2) 도덕의 상대화 ― 기준 없는 윤리는 무정부 상태를 낳는다
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각자 정하는 것이고, 어떻게 사는지도 각자 선택하는 것이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관용과 자유를 강조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논리를 끝까지 일관되게 밀고 나가면, 한 가지 매우 위험한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도덕의 붕괴입니다.
만약 “삶의 의미와 방식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라면,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예수가 자신을 희생한 것도,
단지 각자의 선택과 기준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입니까?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나는 약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내 인생의 의미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스님의 논리라면, 아니요.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기준대로 살고 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세상은 도덕적 무정부 상태(anarchy)에 돌입하게 됩니다.
어떤 보편적 기준도 없기 때문에, 정의는 사라지고,
힘 있는 자의 선택만이 세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25)
—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 혼돈의 사회를 묘사하는 문장입니다.
삶의 의미와 도덕이 절대적으로 상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적 토대입니다.
(3) 사랑의 붕괴 ― 진짜 사랑은 자기기준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헌신이다
스님의 논리에서 가장 깊은 슬픔은, 결국 사랑조차 자기중심으로 환원된다는 것입니다.
스님은 “우리는 의미를 만들고, 그것을 바꾸거나 버릴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논리를 따르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단지 내 감정이고,
내가 그 사랑을 그만두는 것도 내 자유입니다.
이런 논리는 처음엔 자유롭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끝에 가면 사랑은 계약처럼 가볍고, 조건처럼 무너지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사랑은 고통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계속 선택하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때로 눈물로, 손해로, 침묵으로, 십자가로 드러납니다.
누가 자녀를 사랑하면서 ‘의미가 없으니 그만두자’고 말합니까?
누가 치매 걸린 부모를 돌보며 ‘이건 내 기쁨이 아니니 내려놓자’고 합니까?
사랑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선 어떤 진리로부터 흘러오는 것입니다.
그 진리는 십자가에서 절정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는 아무 이득도, 아무 보상도 없이 우리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이 사랑만이,
세상의 모든 ‘이유 없음’을 이기고,
모든 공허함을 덮으며,
모든 존재를 새롭게 창조하는 이유가 됩니다.
2. “그냥 산다”는 말이 무너지는 자리 ― 십자가
스님, 기독교는 말합니다.
“우리는 이유 없이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삽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가장 극단적 현현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유 없이 죽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은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피 묻은 손으로 대답한 사건입니다.
“너는 네가 유용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내가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 이것이 십자가가 말하는 존재론입니다.
“그냥 산다”는 말이 주는 가벼움은 현실 도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가 도피할 수 없는 현실,
즉 고통과 죽음, 죄와 부정의 현실 속으로 스스로 들어오신 하나님입니다.
3. 인간이 만든 의미는 인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의미는 내가 정하고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 의미가 바뀔 수도 있고, 없어도 된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스스로 만든 의미가, 스스로 무너질 때, 인간은 어디로 가야하는 겁니까?”
내가 만든 의미는 나보다 약합니다. 내가 흔들리면 그 의미도 흔들립니다.
내가 좌절하면 그 의미도 붕괴됩니다.
결국 “내가 의미다”라는 말은, 존재의 무게를 허약한 자아 위에 얹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지붕을 거품 위에 세우는 일과 같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말합니다:
“너의 의미는 너 안에 있지 않다. 너의 의미는 너를 위해 울고, 피 흘리고, 죽고, 다시 살아난 그분 안에 있다.”
(요한복음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p201moondust
2020년 5월 24일 1:37 오전감사합니다 스님
@정혁진-q4o
2020년 5월 24일 12:00 오후스님 사랑해
@강성근-n9e
2024년 6월 14일 10:17 오후존재가 먼저다
@정혜성-z2b
2020년 5월 23일 10:31 오후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마나소나이-제자일꾼
2021년 7월 27일 3:26 오후같은 주제로 강연을 하여서 시청하였습니다.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