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에 한 번 꼴로 발생하는 아동 학대로 인한 사망. 그러나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로 인해 본질은 사라지고 비난의 대상만 남을 뿐이다. [아동 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은 학대 피해 아동의 죽음 앞에서 또다시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한겨레 신문의 다섯 기자가 기록한 아동 학대 사망 리포트다. 감춰진 죽음을 복원해 우리 사회의 실태를 점검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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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프롤로그_ 검은 문 안의 아이들을 위해
01 지훈이 살인 사건, 그 뒤4 년 현옥 씨 이야기
02 살아남은 아이들_ 동생의 기억과 치유
살아남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
스물셋, "완전히, 네, 완전히 극복했어요"
"뭉근히 기다지라" 되뇌었던 청소년기
"새엄마 진짜 나빠. 누나 보고 싶다" 상처와 첫 대면
끝없는 식탐과 함구증에 시달린 유년 시절
석고상처럼 굳어 있던 앙상한 여섯 살 아이
03 스무 살까지만이라도 살고 싶었던 아이들
별이 된 263명의 아이들, 그 이름을 부른다
때리는 것만 아니라 방임도 죄
우리나라 아동 학대 현주소
기록되지 않는 죽음 1_ 신생아 살해
기록되지 않는 죽음 2_ 아이와 동반 자살도 살인
04 9년 동안 방 안에 갇힌 아이, 미라가 돼 세상을 만나다
05 피해자였던 가해자
아빠에게 맞은 엄마, 아이를 때렸다
학대에 관대한 법의 저울
가해자는 친부모란 불편한 진실
학대의 이유는 무엇인가? 훈육을 가장한 학대
처벌만이 능사? 치료가 필요하다
06 막지 못한 연수의 죽음
2013년 9월 21일 밤 11시
연수의 죽음 150일 전
연수의 죽음 100일 전
연수의 죽음, 그 후
07 사그라든 25명의 SOS
08 우리의 묵인과 무관심 속에 빚어지는 가정 내 아동 학대 범죄
신고 의무자들의 외면
아동 학대 징후, 몸의 구조 신호 봤다면 신고하세요
하인리히 법칙.영유아 건강검진 그 꿈같은 말
09 취약한 토양
부족한 쉼터, 부족한 예산
아동복지 늘려야 학대 준다
10 사회복지사의 시선으로 본 아동 학대 현주소
에필로그_ 아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에필로그에 덧붙여
부록_ 2015년 이후 아동 학대 주요 사건 및 사회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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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아동 학대 사망 리포트
우리나라에서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은 1~2주에 한 번꼴로 발생한다. 한 해 37명의 아이들이 맞아 죽거나 방치된 채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언론의 선정적 보도는 늘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끔찍한 사건 앞에서 우리는 쉽게 비난할 대상만을 찾을 뿐 '우리'의 문제로 성찰하며 대책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금세 잊어버린다.
이러한 망각을 거스르기 위해 [한겨레신문] 탐사기획팀 다섯 기자는 2008~2014년 우리나라에서 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실태를 꼼꼼하게 조사했다. 정부와 기관의 부실하고 부정확한 통계를 교정하고, 그간의 아동 학대 사례 개요, 판결문, 공소장, 사건 기록, 언론 보도 등을 분석했다. 신체 학대와 방임으로 인한 사망 외에, 그간 우리 사회가 아동 학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신생아 살해, 동반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살해 후 자살'도 포함했다. 그렇게 확인한 학대 사망 아동만 263명이었다.
기자들은 각종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 우리나라 아동 학대의 현주소를 살피고, 알려지지 않았던 아동 학대 사건의 진실을 좇고, 가해자를 인터뷰하고, 피해 아동과 형제자매의 죽음을 겪은 '살아남은 아이'들을 만났다. 또한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과 동행하며 가해자 부모의 거부로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현실에 절망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아동 학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사회복지학 교수, 의사, 심리상담가 등 전문가들과 함께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 제시하고자 힘썼다.
[아동 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은 학대 피해 아동의 죽음 앞에서 또다시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다섯 기자 그리고 이들의 취재를 도운 많은 이들이 함께 기록한 우리 사회의 아동 학대 사망 리포트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아동 학대 실상
저자들은 수집한 자료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아동 학대 사망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석하고 아동 학대와 관련한 여러 유의미한 통계를 도출했다. 예컨대 가해자가 확인된 아동 학대 사망 사건 107건 가운데 친모가 저지른 사건은 39건(36.4%), 친부는 32건(29.9%), 친부 또는 친모가 공범인 경우는 9건(8.4%)이었다. 수치가 보여주듯 아동 학대 가해자의 대부분이 친부모다. 계모, 계부에 의한 학대는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그 수가 훨씬 적다.
학대 사망 아동 중 112명의 죽음을 심층 분석해보니 여섯 살이 되기도 전에 숨진 아이들이 76명이나 되었고, 그중 43명은 돌도 안 된 아기였다. "소풍 가고 싶어요" "마이쮸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부모에게 맞아 사망하는가 하면, "아빠와 같이 있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어른들에게 알렸음에도 학대받다 결국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가해자인 어른 대부분은 아이 탓을 했다. 학대의 이유를 살펴보니 아이가 자꾸 울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등의 생리적 이유가 가장 많았고, 훈육을 명분으로 한 학대가 그 뒤를 이었다. 또한 학대로 사망한 아이들 가정의 절반 가까이가 가정불화를 겪었고, 그 이면에는 실직이나 경제적 궁핍 등의 원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모의 극심한 방임하에 9년 동안 방 안에 갇혀 지내다 열세 살 나이에 생후 5~6개월 수준인 7.5킬로그램의 몸무게로 숨진 아이도 있었다. 이 안타까운 죽음에는 빈곤과 가정불화, 양육자의 우울증에 더해 방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 수준도 일조했다.
사회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아동 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은 감춰진 죽음을 복원해 우리 사회의 책임을 묻는다. [한겨레신문]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짚어내, 이 책에 수록한 '장기 미취학 아동의 학대 사망'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영유아 건강검진, 필수 예방 접종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그와 같은 제도에서 배제된 아이들의 학대 가능성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과거 아동 학대 사망 사건 가해자의 오늘을 살피고자 추적 인터뷰를 하고, 학대 피해를 경험한 아이의 17년에 걸친 치료 및 회복 과정을 탐찰하기도 했으며, 아이들이 보낸 SOS 신호를 번번이 외면한 우리 사회의 무심함과 신고 의무자들의 책임 방기를 고발한다. 이를 통해 아동 학대가 사망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에서 사회적 개입과 구조가 가능했음을 짚어낸다.
아울러 미국과 유럽 등의 사례에 비추어 우리의 아동 학대 실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아동 복지를 비롯한 사회 복지의 증진, 재발 방지를 위한 가해자 치료 및 교육, 아동 학대 신고 의무의 강화, 피해 아동을 보호할 시설과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아동 학대 관련 예산 확충 등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믿을 수 없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아이들의 사연을 접하고, 부실한 통계만큼이나 부실한 대책과 절망스런 현실을 마주하기란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괴롭다고 읽지 않고 관심 갖지 않는다면 "검은 문 안의 아이들", 아직 죽지 않은 아이들을 구할 길이 없다. 어른의 의무로서, 우리는 아이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의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이 줄을 이었다. 장기 결석 아동과 장기 미취학 아동이 숨진 채로 발견되고, 제 부모에게 맞아 죽은 아이들의 시신이 방치되고 유기된 채 발견되었다. 저자들은 더 늦기 전에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을 복기하고, 재발 방지와 대책 마련에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길 촉구한다. 그 출발선에서 [아동 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은 별이 된 아이들 263명이 그리는 좌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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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당한 경험’과 ‘고립’은 아동 학대 가해자의 주요 특성 중 하나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2013년 한 해 동안 확인된 아동 학대 가해자 2만 1,788명을 분석한 결과 4,883명(22.4퍼센트)이 ‘사회경제적 스트레스 및 고립’을 겪고 있었다. 393명은 어린 시절 자신도 누군가에게 학대당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폭력적인 부모와 집 안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일은 아이들에게 출구를 알 수 없는 지옥과 다름없다.
부모의 학대로 한 아이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죽은 아이의 형제자매다. (중략) ‘살아남은 아이’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연구하지 못했다. 일에 치이고 현실적인 법규와 절차에 치이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구청 등은 죽은 아이와 관련한 행정적인 절차가 끝나고 가해자인 부모 등에 대한 법적 절차가 시작되면 사례 관리를 종결해버리곤 했다. 학계의 논문도 없었다. 잠시 친척 집 등에 맡겨졌던 ‘살아남은 아이’들이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어른이 거의 없었다.
치료 당시가 아이가 사건을 겪은 지 7년이 지난 때였어요. 그런데도 아이는 매일 악몽을 꾸며 그때 그 일이 현재도 벌어지는 것처럼 경험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 상처가 있는데도 돌보지 않고 덮어놓고 앞을 향해 가자, 그러면 안 됩니다. 학대받은 아이들이 좀 더 전문적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고, 관리와 지원이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인의 열정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차에 아이만 놔두는 게 미국에선 처벌받을 수 있는 방임이 되지만 한국에선 문제 될 게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동 학대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낮은 인식 수준 때문이다. 특히 방임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때리는 것도 아닌데 방임을 아동 학대라고 볼 수 있나?’라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설령 방임을 아동 학대라 치더라도 전체 아동 학대를 놓고 보면 방임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도 덧붙인다.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의 여전히 낮은 아동 학대 신고 건수는 아동 학대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을 전제하고서 봐야 한다. 이런 낮은 사회적 인식 아래에서 웬만한 아동 학대는 신고의 대상이 되지 않을 개연성이 크고, 법 집행자 또한 상대적으로 관대한 잣대를 가지고 문제를 다루기 십상이다. 한국은 훈육을 이유로 한 체벌이 당연시되고,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학대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시선을 낳는다.
《한겨레신문》이 2008~2014년 학대로 사망한 112명 아이들의 가정 110곳을 들여다보니 절반에 가까운 45가정(40.9퍼센트)에서 공통적으로 ‘가정불화’가 확인됐다. 가정불화의 요인은 다양했다. 겉으로는 부부 싸움이나 아빠의 가정 폭력이 불거졌지만, 그 안에는 실직이나 경제적 궁핍, 질병 등 다양한 원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동 학대가 주로 발생하는 곳은 다름 아닌 가정이다. 가정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가 전체 아동 학대의 83.8퍼센트를 차지한다. 10건 중 8건이 넘는다. 그런데도 왜 언론은,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가정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에 더 요란을 떠는 것일까? 아동 학대 자체도 불편한 소재이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는 더더욱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중략) 또 남의 범죄엔 분노를 쉽게 투사할 수 있지만, 우리의 범죄는 분노보다 비극과 동정 등 여러 감정이 겹쳐 불편하게 다가올 때가 많다. 미디어는 적어도 이런 뉴스를 선호하지 않는다. 사회는 그들이 아닌 우리의 범죄를 직시하길 꺼린다.
다섯 살 연수가 죽었다. 연수는 유독 집에만 들어오면 똥오줌을 가리지 못했다. (중략) 그런 아이를 아빠는 때렸다. 연수는 다시 울었고, 바지에 오줌을 지렸고, 손톱을 뜯었다. 목격자는 어른들이었다. 신고해야 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주저하고 외면하고 회피했다. “아는 사이라서” “이번 한 번만” 등이 이유였다. 어른들이 연수가 보낸 구조 신호를 무시하는 사이 아빠와 엄마는 약으로 연수의 멍을 지우고, 거짓말로 상처를 변명했다. 어른들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아동 관련 예산이 적은 이유는 우리나라 어른들이 이를 덜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우리 사회가 아동의 인권, 안전, 복지, 생명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김선숙 교수는 “예산이 결국 국가의 책임감을 드러내는 가늠자라고 할 때 지금 우리나라는 회피 수준이다. 아동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주양육자의 행복과 삶의 질이다. 사회적 지원 없이 개별 부모에게 책임을 돌려서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해자 면담만으로 아동 학대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 엄마와 30분 가까이 대화를 나눈 뒤 상담원들과 따로 조사실을 나와 “아이 엄마가 측은하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하지만 잠시 뒤, 경찰이 확보한 증거 자료 속 아이 엄마의 모습은 반전이었다. 증거 자료 속에서 조금 전 흐느끼던 바로 그 목소리가 사납게 흘러나왔다. “울지 마라, 이 새끼야. 자다가 왜 울고 지랄이야. 너는 그냥 처맞아야 돼.” 아이의 뺨과 맨살을 짝짝 때리는 소리가 수십 차례 반복됐다.
우리 사회는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엄청난 헌신의 마음가짐으로 투신하는 비영리기관 소속 사회복지사들에게 내맡겼다. 터무니없는 예산을 배당하고, 제대로 된 국책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사망 아동 숫자도, 살아남은 형제들에 대한 연구도 없다) 오로지 그 마음가짐만으로 버텨내라고 말한다. 헌신하던 이들은 범죄자와 너무도 약한 아이들 사이에서 울며 뛰어다니다 지쳐 그만두고, 그 자리는 그저 젊은 사회복지사들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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