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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의 전설

이시백
문전

책소개

자타공인 '몽골 통' 이시백 작가가 『당신에게 몽골(2014)』에 이어 6년 만에 새로 펴낸 몽골 여행 에세이. 해마다 찾아간 몽골과 고비 사막에서 작가는 여행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성찰을 길어올린다. 『누가 말을 죽였을까(2008)』, 『나는 꽃 도둑이다(2013)』, 『응달 너구리(2016)』 등의 소설집과, 권정생 창작기금, 채만식 문학상으로 검증된 입담과 서사력으로 작가는 이번 신간에서도 '이야기 보부상'의 물 오른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본문에 글과 함께 수록된 작가의 여행 사진 또한 눈길을 끈다. 고비사막과 알타이 설산을 넘나들며 담아온 사진들은 코로나19로 왕래가 쉽지 않은 요즘 여행객들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몽골 고원의 매혹적인 설화와 생생한 여행담을 부지런히 오가며 전작보다 더 풍성한 이야기로 채워진 『유목의 전설』은 독자들을 그윽한 초원의 향기 속으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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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 몽골 가는 길
하늘로 날아간 호수
바람의 문으로 들어갔다
불은 막내아들이 지키라
내버려두라
모래강
유목민들이 지닌 현자의 돌
똥꽃이 피었습니다
나무는 왜 서 있을까
돌멩이에 관한 명상
물싸리꽃 베개
초원에 두고 온 오카리나
다른 세상의 달
우리가 어디서 다시 만나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바위집으로 돌아가다
버섯머리의 인간
유목민은 왜 돼지를 기르지 않을까
늑대와 싸우는 개
푸른 늑대의 전설
욜린암의 말
사람은 어떻게 말을 탔을까
전쟁터에서 돌아온 말
낙타는 왜 힘들게 사막에서 살까
고비사막의 고래 낚시
손님은 길에서 잠들지 않는다
너는 어떤 냄새를 지녔느냐
칭기즈칸이라는 사람은 있었을까
알타이에는 말하는 짐승이 있다
하늘을 보고 누이다
게르는 집이 아니라 고향이다
푸른 늑대와 흰 사슴
죽었다 살아온 사람을 만나다
유목민은 아내를 빌려주나
캐러밴 스타일로 여행하다
유목민은 잔인할까
눈 덮인 다섯 왕을 만나다
떠도는 독수리의 부족
우리는 오랑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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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검증된 ‘몽골 전문가’ 이시백 작가가 전하는 유목 문화
농촌의 정주적 삶을 소설로 담아 ‘제2의 이문구’로 불린 이시백 작가가 몽골의 초원을 배경으로 쓴 기행 산문집이 새로 나온다. 십수 년 전 우연히 찾았던 몽골에서 ‘새로운 고향’을 만나 수십 차례나 몽골을 찾고 있는 작가는 자타가 공인하는 ‘몽골 통’이다. 2014년에 펴낸 『당신에게, 몽골(꿈의지도, 2014)』은 몽골을 찾는 여행자들의 필독서가 되어왔다. 6년 만에 펴내는 두 번째 몽골산문집 『유목의 전설(문전, 2020)』에는 몽골 유목민의 문화와 설화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유목적 상상력과 성찰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허리 골절도 막지 못한 몽골 탐사의 생생하고 특별한 체험
『유목의 전설』 에는 작가가 몽골 여행 중에 겪은 예기치 못한 고난과 역경의 순간들이 생생히 담겨 있다. 눈으로 뒤덮인 몽골의 산길을 달리다 자동차와 함께 고립될 뻔한 경험부터 몽골의 샤먼을 만난 뒤 겪은 초자연적 체험, 급기야 험난한 산길을 차로 달리다 구렁에 튕겨 허리가 부러지기까지, ‘찐’ 여행담들이 가득하다. 이는 작가가 여행 도중 겪은 일화들로, 다년 간의 몽골 답사로 얻은 견문의 소산이기도 하다. 작가의 눈으로 지켜본 유목의 일상은 소박하면서 경이롭다. 의리와 인연을 중시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뚝심 있게 풍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몽골 유목민들과의 에피소드는 모래 속에서 건져 올린 사금 조각처럼 빛나는 여운을 남긴다.

사막 멀리 신기루처럼 꼭꼭 숨어 있던 몽골 설화의 재발견
6년 전 발표된 『당신에게, 몽골』과 비교했을 때 도드라지는 것은 책을 꽉 채운 몽골의 역사, 설화, 그리고 유목민들의 문화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해설이다. 화로를 신성하게 여기며 막내아들에게 맡기는 관습이나 특유의 주거형태인 게르를 ‘어머니의 자궁’에 빗대는 등 몽골 고유의 문화와 상징체계를 풀이하는 이시백 작가의 입담은 편안하면서 그리운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민족 영웅 칭기즈칸부터 바람에 떠도는 사막의 덤불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지켜본 유목민들의 삶을 통해 몽골을 흥미롭게 재구성하는 작가는 ‘몽골의 보르헤스’에 비견될만하다. 몽골이 막막하고 지루할 것이란 편견은 『유목의 전설』을 읽고 틀림없이 수정될 것이다.

몽골의 비경과 삶의 단면을 생생히 담아낸 사진으로 떠나는 비대면 여행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국외 여행은 물론 지근거리의 왕래도 자유롭지 못하다. 여름마다 몽골의 광활한 황막을 찾던 ‘솔롱고스 Solongos. 몽골인들이 한국을 가리켜 부르는 말로 ‘무지개 뜨는 나라’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의 여행자들 또한 발길이 묶여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유목의 전설』은 몽골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갈하기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본문에 다수 수록된 사진 작품들이 그렇다.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은 모래 위로 작열하는 햇빛과 바람, 창공의 드라마틱한 대비, 그리고 원색적인 색채들의 향연을 즐기는 몽골 특유의 감각을 여과 없이 전달한다. 다시 몽골을 만나는 그날까지 『유목의 전설』은 안전한 비대면 여행으로 독자들을 몽골의 초원에 데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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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몽골에 가면 모래가 사람을 삼킨다는데 조심해라.
툭하면 몽골로 떠나는 내게 노모가 말했다. 요즘 들어 티브이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노모가 어느 사막의 모래 수렁을 보신 모양이다.
모래 수렁에 삼켜지지 않았지만 허리가 부러져 돌아와 이 글을 적는다. 여행을 마치는 날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슬퍼할 일도 딱히 없었고 부러진 허리는 러시아 진통제 덕에 그리 눈물을 흘릴 만큼 아프진 않았다. 목이 무언가에 졸리듯 메어오고 눈물이 쏟아졌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느닷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은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었다. 슬프기보다 당황스러웠다. 그런데도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 것이 아닌 어떤 슬픔에 목이 메어왔다.

석 달 동안 갑옷처럼 생긴 보조기라는 걸 두르고 누워지내며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 눈물이 생각난다. 그건 누구의 눈물일까. 내 눈물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모르는 내가 흘린 눈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몽골은 그렇게 나를 내게서 풀어내는 공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서 있으면 내 안의 성채에 갇혀 있던 무엇이 검은 양탄자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것은 불모의 언덕에 잎도 없이 말라가던 고비의 자끄나무로 서기도 하고, 영원히 푸른 하늘에 걸린 한 장의 생뚱맞은 구름이 되었다.

말하자면 이 글은 내가 나를 떠나 만난 나의 여행기다. 불모와 무화의 공간에서 비로소 조우한 나의 또다른 세계였다. 광활한 고비에 놓인 돌멩이가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기다리며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아. 나는 고비의 작은 모래알이었다. 까끌거리는 입자들에 둘러싸여, 움켜쥐면 미끄러져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수렁이라고나 할까. 나이든 어머니의 눈에는 그것이 보였던 것이다.

돌멩이가 자라서 싹을 틔우도록 물을 주고, 밤마다 별을 건너는 이야기를 들려준 몽골의 형제 버드러와 볼로르마에게 감사하다.

유목민에게 대지는 어머니다.
땅을 어머니로 여기는 것은 여러 신화에 등장한다. 반고가 천지를 개벽하고, 여와라는 여신이 나타나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중국의 창조신화도 지모신의 원형을 지닌다. 유대인들의 성서에도 여호와가 흙(adamah, 아다마)으로 사람(Adam. 아담)을 빚으니, 대지는 어디에서나 창세의 어머니다.
이러한 신화 구조는 몽골의 유목민들에게도 다르지 않다. ‘인간이 벌거숭이가 되고, 개가 털을 가지게 된 이유’라는 몽골 설화에는 진흙으로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만들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영생수를 가지러 가는 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을 보면 하나님이 땅에 사람 모양의 구덩이를 파고 천둥비를 내려 진흙으로 메웠는데, 비가 그치고 볕에 마르자 진흙이 굳어 사람으로 튀어나왔다고 한다. 땅이 사람을 만들어낸 어머니라는 원형은 다르지 않다.
대지를 인격화한 ‘에투겐’의 어의는 ‘어머니의 배’다. 대지는 젖과 피인 물을 흘려 사람과 가축과 풀을 자라게 하는 어머니의 자궁인 셈이다.
유목민들은 어머니인 땅을 파거나, 피로 더럽히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겼다. 칭기즈칸의 안다인 자무카는 초원의 헤게모니를 놓고 여러 차례 싸움을 벌이다가 칭기즈칸에게 포로로 잡힌다. 그간의 반목을 털고 화해하자는 제안을 받지만 자무카는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으며, 자신은 칭기즈칸 앞을 가로막는 돌멩이밖에 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며 죽음을 자청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무카도 한 가지 간청을 한다. 피를 흘려 어머니인 대지를 더럽히는 처형을 피하게 해 달라는 장면이 『몽골비사』 에 실려 있다.
“형제가 허락하여, 나를 빨리 떠나게 하면, 형제의 마음이 편안하다. 형제가 허락하여, 죽일 때 피가 안 나오게 죽여라! 죽어 누우면, 나의 유골이라도 높은 곳에서 영원히 그대의 후손에 이르기까지 가호하여 주겠다.”
유목민에게는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어머니 대지를 더럽히는 일이었다.

바양울기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카자흐족 운전사는 레이밴 안경을 밤낮으로 쓰고 있으며 콧수염이 멋진 중년의 사내였다. 며칠을 지켜보니, 그는 한 손으로 운전하는 버릇이 있었다. 여행 경험이 많아 길이 익숙한 탓으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는데 힘이 모자란 차의 엔진이 푸드득거리며 멈추기 일보 직전이다. 재빨리 저단의 기어를 바꾸어야 하는데 그는 여전히 한 손으로 핸들만 움켜쥐고 있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여자 가이드가 민첩하게 그를 대신해 변속기어를 넣었다. 천만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무언가 석연찮았다. 설산을 오를 때도 그는 두통이 심하다며 숙소에 머물렀다.

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의 얼굴이 한쪽으로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여전히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처지고 한쪽으로 돌아갔다. 사정을 물으니 혈압이 높아져 얼굴이 일그러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딘가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혀서 안면근육이 마비된 증상이었다.
비로소 그가 한 손으로만 운전을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중풍 증세가 있는 운전사가 모는 차에 실려 가파르고 험한 산들을 오르내렸다는 걸 생각하자 아찔했다. 당장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지만 그는 카자흐족의 전통적인 처방을 하겠다고 했다. 이튿날, 그가 한쪽 볼에 종이를 붙이고 나타났다. 코란 경전의 기도문을 적은 종이를 뺨에 붙인 그는 문제없다며 남은 여행을 강행했다. 다행히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평탄한 길이라 말릴 수가 없었다. 울기에 돌아가면 병원부터 가보라고 당부를 했다.
쳉겔 솜을 지나 언덕을 넘는데 푸르공의 소음기가 떨어졌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차에서 내려 한 손으로 소음기를 떼어 차 뒤에 실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푸르공이 내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차창으로 마구 비가 들이쳤다. 운전사는 태연히 한 손으로 차 안을 주섬주섬 뒤졌다. 잠시 후 그가 꺼낸 것은 차창에 끼울 유리창이었다. 볼에 붙인 코란 기도문 덕인지 그는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울기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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