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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길

레이너 윈(Raynor Winn)
쌤앤파커스

책소개

쓰다 만 책의 빈 공간 같은 시간을 채워준
회복과 치유의 소금길 1,000킬로미터


열여덟에 처음 만나 서른두 해를 함께한 중년 부부 레이너와 모스는 불과 일주일 만에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두 사람이 스무 해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관리했던 집과 농장은 지루하게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모두 빼앗겼고, 남편 모스마저 치료제도 없이 진통제로만 버텨야 한다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이제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더는 내몰릴 곳 없는 벼랑 끝에 선 두 사람은 내일을 위해, 희망을 되찾기 위해 배낭 하나씩만 메고 영국 남서부 해안의 절경을 품고 이어지는 내셔널 트레일 코스인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로 향한다.

평범한 주부였던 레이너 윈이 쉰이 넘어 쓴 첫 번째 책이기도 한 《소금길》은 1년여 동안 1,0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묵묵히 걷는 동안 경험한 가지각색의 사람들, 쉽지 않은 여정 그리고 자연이 두 사람에게 선물한 진심 어린 위로와 희망을 담았다. 영국에서는 출간 직후부터 수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선물하며 여러 매체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관찰 예능을 보는 듯한 현실감 넘치는 부부의 살아 숨 쉬는 이야기와 함께 영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유려하게 묘사한 문장으로 가득한 이 책은 유례없는 세계적 팬데믹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이들에게 위로와 함께 다시 한 걸음 내디딜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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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부 빛을 향하여
1. 인생의 먼지
2. 상실
3. 대변동
4. 부랑자들과 방랑자들

2부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
5. 노숙자
6. 걷기
7. 굶주림
8. 우리가 있는 곳

3부 머나먼 길
9. 도대체 왜
10. 초록색, 파란색
11. 살아남기
12. 바다의 댄서들
13. 살가죽
14. 시인들

4부 소금 맛이 살짝 밴 산딸기
15. 바다를 바라보는 땅
16. 또 다른 길을 찾아서
17. 추위

5부 선택
18. 양털 깎기

6부 경계선에서
19. 생명의 기운
20. 받아들이기
21. 소금길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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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영국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걸으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스스로를 구원해 생의 의미와 자아를 되찾은 놀라운 이야기.
《인디펜던트》

레이너 윈은 바다 곁 두 뼘 남짓한 좁은 길을 걸으며 슬픔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자연과 대화하며 경험한 회복을 아름다운 문장 속에 풀어냈다.
《가디언》

레이너 윈과 모스 부부는 생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와 그런 인간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자연의 모습을 이 책에 가득 담아 보여준다. 누구든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자연을 벗 삼아 걷고자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타임스》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는 이 책을 도저히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다. 동시에 잔잔하게 전해지는 위로와 평안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당신에게도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월스트리트저널》

이 책을 읽을 당신도 분명 고통과 운명을 거슬러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두 사람의 여정에 깊이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이야기로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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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우리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될지도 몰라.”
“하지만 언제 우리가 한 번이라도 쉬운 선택을 한 적이 있었어?”

모든 것을 잃고 선택의 순간에 선 중년의 부부, 레이너와 모스
쓰다 만 책의 빈 공간 같은 시간을 채워준 회복과 치유의 1,000킬로미터

“영국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걸으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스스로를 구원해
생의 의미와 자아를 되찾은 놀라운 이야기.”
《인디펜던트》

열여덟에 처음 만나 서른두 해를 함께한 중년 부부 레이너와 모스. 두 사람이 스무 해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관리하며 다음 주도, 내년도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머리를 누이고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집과 농장은 3년 동안 지루하게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 모스가 겪고 있는 극심한 통증의 원인은 치료제도 없이 진통제로만 버텨야 한다는 희귀병, 피질기저퇴행이었다. 의사에 따르면 모스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5년 정도이고, 치매 증상과 함께 몸은 점점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그대로 숨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데.
불과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이 모든 일들로 집도 절도 모두 잃게 된 두 사람은 이제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더는 내몰릴 곳 없는 벼랑 끝에 선 부부는 배낭 하나씩만 메고 영국 남서부 해안의 절경을 품고 이어지는 내셔널 트레일 코스인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로 무작정 향한다. 사실 이들에게는 그저 걷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 같지만, 이대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밤이 되면 자연 한가운데에서 텐트와 침낭을 펴 잠을 청하고, 위험한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절벽과 바다, 하늘을 벗 삼아 그 곁을 걷고 또 걸었다. 이제 남은 희망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 1년여 동안 1,0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묵묵히 걷는 동안 자연은 진심 어린 위로를 선물했고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평범한 주부였던 레이너 윈이 쉰이 넘어 쓴 첫 번째 책인 《소금길》은 관찰 예능을 보는 듯한 현실감 넘치는 부부의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출간 직후부터 짙은 공감을 끌어내며 수많은 독자에게 위로와 감동을 선물했다. 또한 첫 책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부부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영국의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유려하게 묘사한 문장으로 가득한 이 책은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코스타 북 어워드’와 생태와 환경 분야 도서에 수여하는 ‘웨인라이트 프라이즈’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페이지마다 밑줄 긋는 것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눈 앞에 펼쳐지는 영국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너무도 현실적인 부부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끝이 날 수는 없었다. 병에 걸린 건 모스 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두 사람이었다. 우리 부부는 한 몸이었고 하나로 합쳐지고 뭉쳐진 분자였다. 그만의 인생도 아니고, 나만의 인생도 아닌 바로 우리 두 사람의 인생이었다. 우리에게는 나름대로 인생을 어떻게 끝마칠지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아흔다섯이 되면 어느 산꼭대기에 올라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그저 잠을 자듯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다. 병원 침대 위에서 따로 떨어져 죽을 날만 기다리는 그런 마무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절대로 헤어지지 않고 죽음도 함께 할 생각이었다.
(37~38쪽)

그렇게 중년의 부부는 배낭을 메고 마인헤드부터 시작하는 1,000킬로미터가 넘는 긴 여정을 두 사람의 발자국으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두 사람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느 칠흑 같은 밤,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밀려드는 파도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 텐트를 그대로 들고 해변을 달리기도 하고, 가진 돈이 없어 야영장에 몰래 들어가 조용히 텐트를 친 뒤 짧은 잠을 청하고는 빠져나오기도 한다. 한번은 큰맘 먹고 산 파이를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먹을 것을 찾던 약삭빠른 갈매기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겪는 레이너의 모습에 안타까움이 느껴지면서도, 위로인 듯 약 올리는 듯한 모스의 말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한테 일정이 있었던가?”
“그야 물론이지. 이렇게 걷고 쉬다가 다시 우리 미래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또 걷는 거야.”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
(110쪽)

옷깃이 없는 하얀 셔츠를 입고 있던 소년 모스는 열여덟 레이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서른두 해를 함께하며 이제는 중년이 된 두 사람을 찾아온 시련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가혹했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시작된 법정 공방은 일주일 안에 집을 비우라는 결정으로 끝났고, 모스마저 치료법이 없는 희귀병에 걸리고 말았다. 모든 것이 마치 꿈 같았던, 아니 꿈이기를 바랐던 그때…… 레이너와 모스는 선택의 순간에 있었다. 마치 쓰다가 만 책의 비어 있는 공간 같은 그 시간을 내버려두거나 희망으로 채워나가거나. 두 사람은 희망을 선택했다.


내일을 위해, 희망을 위해
우리는 걷고 또 걷기로 했다

“모든 물질적인 것을 잃고 완전히 발가벗겨진” 후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면서 “두 사람의 머리카락은 형편없이 상했고 손톱은 부러졌으며 옷은 올이 다 드러나 보일 정도로 닳았지만”, 여전히 살아 있음을 경험하며 몸과 마음은 더욱 강해졌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여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힘없이 늘어져 있던 연약하고 창백했던 몸은 시간이 지나면서 군살 하나 없이 햇볕에 탄 몸으로 변했고,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탄탄한 근육까지 붙어 있었다.
마침내 여정을 마치며 희망을 갖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은 1년여 전, 압류를 집행하기 위해 집을 찾은 사람들을 피해 계단 아래 숨어 있던 처음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한결 단단해진 모습이다. 레이너와 모스의 관계 또한 한층 더 깊어졌고 두 사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서로가 있기에 완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집에 와 있었다. (…) 모스가 바로 나의 집이었다”라는 말로 남편 모스의 소중함과 사랑을 고백하는 레이너의 말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소금길》은 유례없는 세계적 팬데믹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독자들에게 《인디펜던트》의 서평처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스스로를 구원해 생의 의미와 자아를 되찾은 놀라운 이야기”로 위로와 희망을 선물하고 다시 한 걸음 내디딜 용기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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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래 나도 알아. 농장에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우리끼리만 지낼 수 있었잖아? 우리만의 섬에서 말이야.”
우리에게 농장이란 어느 모로 보나 바로 그런 의미였다. 우리만의 섬이었다.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나머지 다른 세상을 등지고 새로운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숲 사이로 펼쳐지는 광경은 흡사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들어간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사방의 땅은 옛날 방식 그대로 다듬어져 있으며 나무 울타리가 있는 비탈길로 구분되어 있다. 서쪽에 높이 솟아 있는 산맥이 동쪽까지 길게 이어지며 언덕 위로는 가볍고 포근한 구름이 산꼭대기 사이를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거대한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치켜올리고 하늘을 빙빙 맴돌다 나무 꼭대기와 산꼭대기 사이 어딘가쯤 푸른 창공 위에 그대로 떠 있다. 숲으로 들어선 순간 마치 문이라도 닫히는 것처럼 포장된 도로며 마을을 중심으로 한 세상이, 모든 인간 사회의 소음들이 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돌아갈 안전한 피난처 한 곳 없이 그저 떠도는 신세였다. 절망이라는 뗏목을 타고 안개 속을 떠돌게 된 우리는 과연 육지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아니, 도대체 육지가 있기나 한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모스는 창가에 기대서 가시금작화와 야생화가 피어 있는 언덕배기 너머를 바라다보았다. 우리 집이었지만 더는 우리 집이 아닌 곳이었다.
“이 근처에서 머무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아. 웨일즈 지방을 떠나 어디 멀리 가던지 해야지 이대로 있기는 너무 힘들어. 얼마나 오래 떠나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나한테 얼마나 시간이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어디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 새로 집으로 삼을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어.”
나는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 배낭을 꾸려서 어디든 떠나보자고.”
“그래, 우선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로 가보자.” (대변동)

SWCP에 들어선 이후부터 이 초록색 텐트는 우리의 집이 되어 주었다. 매일 저녁이 되면 우리는 마치 의식이라도 치르듯 텐트를 치고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다 들여놓았다. 우선 저절로 부풀어 오르는 깔개를 깔고 그 위에 작은 플리스 담요를 덮었다. 그런 다음 침낭을 편 후 우리 발이 닿는 곳에, 그러니까 텐트 문 앞에 배낭을 들여놓았다. 우리는 배낭을 열어 작은 주머니에 따로 들어 있는 조리도구를 꺼냈고 옷가지들을 꺼내 추위를 막기 위해 텐트 바닥 여기저기 빈 공간에 깔았다. 그리고 텐트 문 지퍼 위쪽 지붕 부분에 달린 고리에 손전등을 매달았다. 이렇게 준비가 다 끝나면 비로소 차를 끓이기 시작했고 모스는 짧게 편집된 《베오울프》를 읽었다. 우리가 가져온 단 한 권의 책이었다. 뭔가 의식 같은 걸 치르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편안히 잠에 빠져들기 전에 안전한 주변 환경을 만들어두려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고? 우리는 그런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한 결코 진정으로 편하게 잠들 수는 없는 것일까? 바닷가 어딘가쯤에 세워놓은 이 텐트 안은 중추 신경 진통제를 먹지 못해 벌벌 떨고 있는 죽어가는 한 남자와 내가 기대고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걷기)

“어디로 가는 길이세요? 배낭여행을 하기에는 좀 시기가 늦지 않았나요?”
스무 살 남짓 되었을까,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와 모자 달린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우리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렇게 물었다.
“랜즈엔드로 가요. 그다음은 아마 날씨에 달려 있겠지만, 어쨌든 계속 걸어갈 겁니다.”
“얼마나 더 갈 건데요?”
“그야 우리가 가고 싶은 만큼.”
“아니, 그럼 돌아갈 계획이 없다는 거예요?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로 대단들 하시네요. 일상을 박차고 나와서 원하는 일을 하다니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서요.”
“아니, 내 말이 맞잖아요. 돌아갈 계획이 전혀 없다면 자유롭게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거지요. 정말 대단합니다.”
남자는 다른 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나 이렇게 외치는 걸 잊지 않았다.
“어르신들, 인생을 즐기세요.”
우리는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렇게 빨리 움직이고 있으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걸어서라면 몇 시간은 걸릴 거리를 단 몇 분 만에 가고 있는 것이다. SWCP는 우리에게 걸어서 가는 길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실제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되었고 출발 지점에서 다음 목적지까지 그리고 다음에 목을 축일 수 있는 곳까지의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황조롱이가 먹잇감을 내려다보는 식으로 길을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움직이는 거리는 몇 킬로미터라는 거리의 단위가 아니라, 움직이는 시간의 단위로 측정되었다.
우리는 세인트 아이브스에서 내렸다. 해가 질 때까지는 1시간쯤 여유가 있었지만, 원래 가려고 했던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땅 근처가 아닌 마을 근처에 내리고 말았다. 그래도 별로 문제는 없었다. 아니,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모스는 여전히 내 곁에 있었고 우리는 자유로웠다. 그렇게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살가죽)

2개월 반의 노동이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선술집으로 갔고 고든은 내게 급료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여름 동안의 유일한 수입이었지만, 이제 내 손에는 1500파운드가 쥐여 있었다. 부드에 도착했을 때 고작 11파운드로 1주일을 버터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
어느 무더운 오후 폴리의 집 주방에서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조리대에 몸을 기대고는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설명을 했다. 농장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수입이 꼭 필요했고 지금은 자기 사정도 빠듯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사정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농장의 경영은 아주 경기가 좋을 때조차 언제나 앞날이 불확실한 일이었고 폴리가 난감한 표정으로 정말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때가 온 것 같았다. 우리의 삶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가고 싶다면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나는 깊게 숨을 한 번 몰아쉰 다음 모스의 대학 진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흡사 절벽 끄트머리에서 두 팔을 활짝 펼치고 밑으로 뛰어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우리는 이삿짐을 꾸리고 승합차 세금과 보험을 처리했다. 그리고 은행 계좌에 한 달 정도 지낼 수 있을만한 집세와 보증금을 예비로 미리 넣어둔 후 집 열쇠를 폴리에게 돌려주었다. 9월은 되어야 신청했던 학생 융자가 나오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아직 지낼 곳 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까 대략 2개월 정도는 집 없이 지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모스의 건강은 지금까지 본 것 중 최악이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200파운드가 남아 있었다. 우리는 승합차에 짐을 싣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내 몸을 휘감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길을 떠났다. 또 다시 머물 곳 없는 신세가 되겠지만, 이번만큼은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양털 깎기)

“우리가 과연 잘한 걸까?”
모스가 진통제 네 알을 삼키고는 바위 위에 앉았다. 나는 중국 약재상에서 구한 진통제 연고를 그의 어깨에 발라주었다. 삶은 양배추 냄새를 풍기는 이 약은 효과는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기분은 들게 해주었다.
“우리가 잘못한 게 뭐가 있겠어. 방이 필요하면 우리가 번 돈으로 방을 얻으면 되고 당신은 다시 공부를 하고. 그리고 나는 또 뭐든 일을 찾을 수 있겠지. 아니면 나도 뭘 다시 배우던가. 그렇지만 이제는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된 거야.”
“그래, 나도 알아. 그건 확실하지. 내 말은 이렇게 다시 걷고 있는 게 잘한 선택이냐는 거지.”
“우리가 살면서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일 거야.”
“그렇다면 좋아. 사실은 그 말을 당신에게서 듣고 싶었지.” (생명의 기운)

우리는 바위 위에 드러누웠다. 몸이 갈색 가죽처럼 바짝 말라갔다. 14개월 전만 해도 힘없이 늘어져 있던 연약하고 창백했던 우리의 몸은 이제 군살 하나 없이 햇볕에 탄 몸이 되었으며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탄탄한 근육까지 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형편없이 상해 있었으며 손톱은 부러졌고 옷은 올이 다 드러나 보일 정도로 닳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시간만 죽이며 지내는 것이 아니라 일분일초가 지나가는 것을 잘 알고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바위는 점점 기울어가는 태양을 따라 그대로 열기를 전달해주었고 바닷물이 들락날락할 때마다 갈매기들은 각자 다른 소리로 울어댔다. 내 손은 시간이 갈수록 주름이 더해졌고 허벅지는 먼 길을 걸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모스가 나를 끌어안고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분명한 열정으로 서둘러 내게 입술을 가져다 댔을 때 갑자기 시간이 거꾸로 흘러갔다. 나는 19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모스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의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순식간에 자라버린 갓난쟁이들의 엄마였다. 우리는 우리였고, 우리가 살아간 일분일초도 우리였고, 온갖 경험을 넣어 푹 끓인 인생이 바로 우리였다. 우리는 우리가 되기 원했던 모든 것이었으며 동시에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모든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로웠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웠고 그런 것들 때문에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오랫동안 염원하던 모습 위에 새로운 모습이 덧씌워졌다. 인생도 기다릴 수 있고 시간도 기다릴 수 있으며 죽음도 기다릴 수 있다. 영겁의 시간 속에 지나가는 지금의 일분일초를 우리는 단 한 번, 오직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다. 나는 집에 와 있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모스가 바로 나의 집이었다. (소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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