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작가후기-『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또 하나의 결말
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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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 한 구석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어 올리고, 그곳에도 보편적인 인간의 약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 보였다. 우리 시대 중요한 작가에 의해 쓰여진 이 작품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 살만 루시디 / 인도 출신 영국 작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선량한 개인과, 정의롭지 못한 지배자가 군림하는 집단 간의 불행한 갈등의 역사를 화자인 주인공의 국민학교 생활 경험을 통해서 우의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 이태동 / 문학평론가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명민한 철학적 분석. 주인공이 속한 학급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맞서는 정치적 권력 관계를 여실히 비추는 거울이다.
- [누벨 옵세르바퇴르]
마지막 한 페이지까지 매혹적인 마법에 걸린 것처럼,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보석과 같은 작품.
- [르 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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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실을 통해 엿본 권력에 대한 욕망과 실체
"정의의 실현은 그 방식 역시 정의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는 국민학교에서 벌어지는 힘 있는 아이와 힘 없는 아이들 간의 폭력적 권력과 굴욕적인 복종을 통해 우리 사회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실체를 보여준다.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한병태는 학급의 급장(반장)인 엄석대가 반 아이들을 좌지우지하며 횡포 부리는 것이 못마땅하다. 석대가 누리는 권력의 부당함을 담임선생님에게 호소하지만, 담임선생님은 그런 석대의 폭력을 눈감아준다. 부모님에게도 하소연해 보지만 오히려 석대처럼 힘을 키워보라고, 전교 1등을 해보라는 엄한 충고를 듣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병태는 엄석대가 매번 전교 1등을 하는 은밀한 이유를 알게 되는데.......
한편 병태는 엄석대가 만든 그 권력이 폭력적이고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엄석대와 친구들의 무리 속으로 자신만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소외감에 눈물 흘린다. 엄석대가 만들어놓은 규칙에 동조하는 것이 비굴한 복종일 수 있지만 권력자의 그늘 아래서 평온함을 누리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엄석대를 통해 독재자의 횡포를 고발하면서도 그런 독재자를 옹호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한병태의 인간적 고뇌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또한 새로 부임한 선생님과 반의 우등생들을 지식인에 빗대어 그들이 자유와 합리가 통용되는 새로운 질서, 즉 민주주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궁극의 물음을 던진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출간 33주년,
우리 사회는 정의로워졌는가?
이문열 작가는 1980년대 '87체제'의 전야 그리고 시사용어로 '4‧13호헌선언'의 아침에 조간신문을 읽고 난 다음 망연해 있던 차에,[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원고를 써서 잡지에 꼭 게재해야겠다는 절박할 만큼의 시의성을 띄고 집필을 시작했다.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 말과 1960년 초로 자유당 정권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다. 독재자의 폭력적 권력에 대한 반발로 4‧19혁명이 일어나기까지 당시의 한국 정치상황을 풍자한 소설이다.
이문열 작가는 엄석대를 통해 정당성과 정통성이 없는 권력을, 그를 둘러싼 분단장 급의 상위 그룹은 지식인 출신의 관료 내지 행정기술자들을 빗대어 보여준다. 첫 번째 담임선생은 미국이며,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레이먼드 보너가 '독재자와의 왈츠'라 이름 붙인 6, 70년대의 외교 정책이다. 또 두 번째 담임선생은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이념이며, 그가 아이들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방법은 그 폭력성에 다름 아니다.
출간 33주년 판이 되는 이번 책의 서문에서 이문열 작가는, "33년 전 87체제 형성전야 어느 시기에 느꼈던 시대의 엄중함이 이번에는 처절한 진통의 예감 이상으로, 불타고 허물어진 뒤의 적막과 황무함으로까지 다가든다."고 출간 소회를 밝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50년 말부터 1960년대 초, 그리고 이문열 작가가 아침신문을 보다가 이 책을 서둘러 집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1987년, 그리고 지금 출간 33주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정의와 공정을 향해 나가고 있는가?" 이 책은 묻는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이문열의 대표작이자 수작(秀作)
제1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 선정 이유서에서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권력의 형성과 몰락의 과정을 읽을 수가 있다. 이것은 민족사의 규모를 국민학교의 교실에 집약시킨 것이기도 하고, 하나의 분자식처럼 권력의 실상을 생활 영역에 확대해 보인 것이기도 하다. 만약 이상이 살아 있어 이 작품에 접하더라도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으리라. 이 이상의 선정 이유가 달리 있을 수 있겠는가."로 극찬하였다.
영화,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흥행하였고,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소개되면서 청소년과 어린이도 읽을 수 있는 소설로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러시아, 콜롬비아, 폴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어 호평받았다. [르 몽드]는 "마지막 한 페이지까지 매혹적인 마법에 걸린 것처럼,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보석과 같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번 개정신판에서는 표지를 새롭게 하고 내용 일부를 손봤으며,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통해 사유(私有)의 발생과 권력의 형성을 예술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함께 형상화한 중편 [들소]를 함께 묶어 한권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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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 굴복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전입 첫날의 그 작은 충돌은 엄석대에게 꽤 강한 인상과 더불어 어떤 경계심을 일으켰음에 틀림없었다. 그는 첫날의 승리가 못 미더웠던지 다음 날 한 번 더 그걸 확인하려 들었다. 역시 점심시간의 일이었다. 내가 바쁘게 도시락 뚜껑을 여는데 앞줄에 앉은 아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 설령 네가 옳더라도…… 나는 반 아이들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석대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네가 반드시 그러리라 믿고 있을 것처럼…… 아이들의 그 지지란 것이 실상은 석대의 위협이나 속임수에 넘어간 거짓된 것일지라도…… 마찬가지야. 나는 어쨌든…….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석대의 힘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 지금껏 흐트러짐 없이 잘돼 나가던 우리 반을…… 막연한 기대만으로는 흩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지.”
너무도 허망하게 끝난 싸움이고 또한 그만큼 어이없이 시작된 굴종이었지만, 그 굴종의 열매는 달았다. 오래고 끈질긴 반항 끝에 이루어진 굴종의 열매라 특히 더 달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의 질서 안으로 편입된 게 확인되면서 석대의 은혜는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가 내게 바라는 것은 오직 내가 그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 그리하여 그가 구축해 둔 왕국을 허물려 들지 않는 것뿐이었다. 실은 그거야말로 굴복이며, 그의 질서와 왕국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전제와 결합되면 그 굴종은 곧 내가 치른 대가 중에서 가장 값비싼 대가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자유와 합리의 기억을 포기한 내게는 조금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모두 교단 위에 손 들고 꿇어앉아 다시 한번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놈은 무언가 그들에게 더러운 속임수를 쓰고 있어. 그들은 자기들이 성공해서 받게 될 것보다 더 큰 대가를 놈이 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 같았어…….”
“사람은 현란하게 꾸며진 말을 벗기면 모두 저마다의 소를 좇고 있을 뿐이에요. ‘뱀눈’은 권력의 소를 좇고, ‘달무리’는 그 ‘뱀눈’이 나누어주는 부귀의 소를 좇는 식으로……. 그런데 제가 좇는 소가 무엇인지 아세요? 그것은 풍요와 안락의 소예요. 그리고 ‘뱀눈’을 좋아하는 것은 그가 바로 그것들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제 ‘뱀눈’ 아닌 사람이 나를 데려간다 하더라도 그가 그런 것들을 줄 수 있다면 또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 더구나 그의 부족은 강성하고, 그의 가축 떼는 들판을 덮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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