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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 신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연암서가

목차

옮긴이의 말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와 자살
철학적 자살
부조리한 자유
부조리의 인간
돈 후안주의

정복
부조리한 창조
철학과 소설
키릴로프
내일 없는 창조
시시포스 신화

부록-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에서의 희망과 부조리
카뮈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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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출간 70주년, 탄생 100주년, 다시 읽는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

부조리의 인간의 대답은 긍정이요, 그의 노력에는 끝이 없을 것이다. 개인의 운명은 있어도, 그 이상의 운명이란 없으며, 혹 있다면 숙명적이기에 경멸해도 좋을, 인간에 의해 심판되고 말 단 하나의 운명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이외의 것에 관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나날의 주인임을 알고 있다. 인간이 제 삶을 향해 몸을 돌려세우는 그 미묘한 순간, 자신의 바위를 향해 되돌아가던 시시포스는 자신에 의해 창조되고 자신의 기억의 시선 아래서 통일되어 머지않아 죽음으로 봉인될, 그렇게 또 하나의 시시포스 운명이 되어 가고 있는, 서로 아무런 연관 없는 일련의 행위들을 가만히 응시한다. 이렇듯, 인간적인 모든 것이 온전히 인간적인 근원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신하는 시시포스, 보고자 갈망하되 밤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눈먼 자 시시포스는 지금도 나아가고 있다. 바위는 또다시 굴러 떨어진다.
(/ 본문 중에서)

부조리와 반항을 예찬한 20세기 프랑스의 지성,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페스트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고민한 휴머니스트, 실존주의 거장 사르트르와의 우정과 결별의 에피소드, [이방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국제적인 명성의 작가이자 연극인, 아마도 이 정도가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카뮈의 초상일 것이다. 그러나 47년의 짧고도 긴 생을 마감했던 카뮈의 저 찬란한 결정들 이면에는, 부조리와 반항을 철저하게 몸으로 배워야만 했던 한 가난한 알제리 청년의 고뇌, 폐렴으로 인해 참전도 교수자격시험조차도 포기해야만 했던 무력한 반항인의 침묵, 당대의 지식인들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당했을 만큼 완강했던 중도의 고집, 그리고 명색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자식의 책을 단 한 줄도 읽을 수 없었던 글 모르는 어머니가 있었다. 카뮈의 생의 굵직굵직한 마디들은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 결핍의 소산이자, 숱한 패배들에서 길어낸 영광 그 자체였다.
오늘날 카뮈의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부조리라는 키워드는 인간 실존이 처한 기묘한 상황을 규정하기 위한 철학적 전문용어이기 이전에, 이렇듯 한 인간이 체득하고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묘사하기 위한 일상적 개인어의 차원에서 이해될 때, 공감의 폭은 넓어지고 그 울림은 깊어질 것이다. 1943년 출간 당시 이 [시시포스 신화]가 본격 철학 이론서가 아닌 에세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온 것도, 당대 지식인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그 흔한 철학적 개념어도 없이 1인칭 서술로 작성된 것도, 추론과 묘사가 거듭하는 가운데 카뮈의 고뇌가 나?너?그들의 고뇌로 변주되어 결국 우리와 접속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실존철학의 전통에서 실존적 한계상황의 귀결을 가리키기 위해 도입되었던 부조리는 카뮈에 이르러 매우 폭넓은 의미를 부여받아, 인간조건을 성찰하기 위한 명철한 의식의 출발점으로 뒤바뀌고 있다. 요컨대 카뮈의 부조리는 ‘인간의 실존은 부조리하다’에서처럼 상황을 닫아버리는 술어가 아니라, ‘부조리한 실존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처럼 상황을 열어놓기 위한 형용어로 기능한다. 이러한 부조리는 고착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호소와 세계의 비합리적 침묵의 맞대면"에서 태동하는 생생한 삶의 ‘감정’이기에, 카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맛보게 되는 이 부조리의 감정을 설명하거나 분석하려들지 않고, 일상에서 느낄 법한 평범한 예시들로 그려내고 있다. 때로는 권태로움에서 시작해 염려를 낳고 불안을 조장하는가 하면, 때로는 송두리째 뒤흔들어 헤아릴 길 없는 전락의 상태로 몰아넣는 부조리의 감정을, 잠들어 있는 우리의 정신을 일깨워 명철한 의식으로 이끄는 발화점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뮈에게 있어 ‘낯섦’과 ‘구토’를 불러일으키지만 실존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진정한 삶을 추동하게 만드는 부조리를 회피하려 들거나 알량한 희망으로 덮어버리는 것은 우리의 의식과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요, 곧 인간이 제 삶을 배반하는 일이 된다. 우리의 실존을 난감하게 만드는 부조리가 우리의 실존을 유지시키고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토대라는 사실, 바로 여기에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역설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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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부조리의 인간의 대답은 긍정이요, 그의 노력에는 끝이 없을 것이다. 개인의 운명은 있어도, 그 이상의 운명이란 없으며, 혹 있다면 숙명적이기에 경멸해도 좋을, 인간에 의해 심판되고 말 단 하나의 운명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이외의 것에 관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나날의 주인임을 알고 있다. 인간이 제 삶을 향해 몸을 돌려세우는 그 미묘한 순간, 자신의 바위를 향해 되돌아가던 시시포스는 자신에 의해 창조되고 자신의 기억의 시선 아래서 통일되어 머지않아 죽음으로 봉인될, 그렇게 또 하나의 시시포스 운명이 되어 가고 있는, 서로 아무런 연관 없는 일련의 행위들을 가만히 응시한다. 이렇듯, 인간적인 모든 것이 온전히 인간적인 근원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신하는 시시포스, 보고자 갈망하되 밤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눈먼 자 시시포스는 지금도 나아가고 있다. 바위는 또다시 굴러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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