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아작시오를 짧게 다녀오다
캄포 산토
바닷속 알프스
옛 학교 교정
에세이
생소, 통합, 위기―페터 한트케의 연극 [카스파르]에 대하여
역사와 자연사 사이―총체적 파괴를 다룬 문학 서술에 대하여
애도의 구축―귄터 그라스와 볼프강 힐데스하이머
통회―페터 바이스 작품에 나타난 기억과 잔혹에 대하여
밤새의 눈으로―장 아메리에 대하여
아기토끼의 아기, 아기 토끼―시인 에른스트 헤르베크의 토템 동물에 대하여
스위스를 거쳐 유곽으로―카프카의 여행일기에 대하여
꿈의 직물―나보코프에 대한 촌평
영화관에 간 카프카
스콤베르 스콤브루스 또는 흔하디흔한 고등어―얀 페터 트리프의 그림에 대하여
적갈색 가죽 조각의 비밀―브루스 채트윈에게 다가서며
음악의 순간들
재건 시도
독일 학술원 입회 연설
주
편집자의 말
출전
옮긴이의 말 | 산문의 공중부양술
W. G. 제발트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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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와 의구심-제발트의 유고집을 받아든 독자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달라붙어 있다. 우리는 너무 갑작스럽게 그를 잃었고, 이 책은 죽은 자의 명성에 의지해 되는대로 묶은 선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편집자의 섬세한 선별과 탁월한 배치 덕분에 의구심은 첫 글을 읽어나가는 사이 빠르게 불식된다. [캄포 산토]는 산문이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황홀한 책이다.”
_디 차이트
“가만하고 다정한 목소리…… 이 위대한 작가는 우리 곁을 불쑥 떠나갔지만 그의 흔적은 아주 오래 남을 것이다. 카프카, 보르헤스, 프루스트와 나란한 자리에 이제 제발트가 있다.”
_뉴욕 타임스 북 리뷰
“우리는 지금껏 위대한 문학이라는 주장에 의심을 품어왔고, 확실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제발트의 경우 이 주장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는 진짜 위대한 작가(였)다.”
_존 밴빌
“눈부신 정취를 물씬 풍기는, 엄정하면서도 달콤한 책. ……[캄포 산토]는 제발트의 이른 죽음으로 문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잃었는지 깨닫게 하는 책이다. ……전반부에 실린 코르시카 산문은 완전무결한 보석이다. ……후반부에 실린 나보코프, 카프카, 귄터 그라스, 그리고 조현병을 앓았던 시인 헤르베크를 다룬 글들은 보기 드문 완벽한 요리를 눈앞에 둔 것 같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_보스턴 글로브
“코르시카 여행에 대한 네 편의 산문은 (허구, 기억, 역사, 여행기가 기이하게 뒤섞인) 제발트 문학 고유의 가치를 모두 품고 있다.”
_뉴욕 선
“모더니즘 문학의 죽음이라는 명제는 재고되어야 한다. 모더니즘의 거장 카프카와 보르헤스의 영혼이 여기 제발트의 몸에 깃들어 떠돌고 있으니.”
_월스트리트 저널
“코르시카 산문은 장편으로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출간되어 마땅한, 제발트가 독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다. ……후반부에 실린 에세이들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특히 페터 한트케, 알렉산더 클루게, 볼프강 힐데스하이머, 장 아메리에게 이입해 진행한 논의에서 구체화되는 것은 다름아닌 (비애, 기억, 파괴를 맴돌았던) 제발트 자신의 다큐멘터리 미학이다. 문학과 학문의 경계에서 떠도는 독특한 제발트-사운드는 문학적인 글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글에서도 울려퍼진다.”
_타게스차이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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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만으로는 불행을 완전히 몰아낼 수 없다.
그러나 불행은 언어로만 극복할 수 있다.’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폐허를 걷는 작가
제발트가 남기고 간, 문학을 넘어선 문학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작가 W. G. 제발트의 유고집 [캄포 산토](2003)가 독일에서 출간된 지 15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저작은 문학-에세이-학술의 경계를 휘젓는 제발트식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저작으로 손꼽힌 책이다. [공중전과 문학]을 번역했던 독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이경진 교수가 제발트의 정밀하고 명징한 문체를 충실하게 따라가며 어조와 분위기까지 새겨 옮겼다.
이 책은 장편으로 기획했으나 때이른 죽음으로 완성하지 못한 코르시카 배경 산문픽션 4편, 1975년부터 2001년까지 쓴 에세이 14편을 묶은 선집이다. 산문에서는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의 보이지 않는 문턱을 예민하게 감각했던 화자-작가가 자신의 최후를 예감한 듯,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사는 섬 코르시카로 떠난다. 에세이에서는 제발트가 오랜 시간 천착했던 카프카와 더불어, 페터 한트케, 장 아메리, 페터 바이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브루스 채트윈 등 동시대 작가들이 등장한다. 특히 작가 자신을 평생 휘감았던 주제(산문 장르, 애도와 기억, 파괴의 자연사 등)의 발전 과정이 하나의 해명처럼 드러난다.
미완으로 남은 제발트 최후의 문학 프로젝트: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사는 섬 코르시카로 떠나다
장편 [아우스터리츠]가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1년 12월 14일, 제발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우리에게는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이었지만, 영어권과 독일어권 문단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작가로서의 명성이 절정에 오른 시기였다. 예상치 못한 작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독자들의 참담한 마음은 지금도 여러 지면에 남아 있어, 당시의 비통한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리고 그가 남긴 글들을 정리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특별히, 미완으로 남은 유고들이 있었다. 1990대 중반부터 쓰기 시작한 코르시카섬에 대한 글로, [아우스터리츠] 집필에 집중하느라 잠시 미뤄둔 프로젝트였다. 장편으로 구상하며 관련된 온갖 자료를 수집했던 그는 1996년부터 독립적인 단편을 하나하나 완성해 여러 지면에 발표하기도 했다. 코르시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업해둔 발표 원고들과 미발표 원고들은 이제 연구자들의 검토와 정리를 거쳐 한 권의 책으로 묶이게 된다. 그가 떠난 지 2년 뒤, ‘교회 묘지’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캄포 산토’라는 제목을 달고서였다. 공교로운 사실은 제발트가 반복해서 썼던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이 글들에서도 의미심장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코르시카 고유의 장례 및 매장 문화를 천착하면서 죽은 자와 함께 사는 주민들의 삶에 다가선다.
이렇게 묶인 코르시카를 배경으로 한 이 개별 글들은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면서 서로를 되비추고 해명해준다. 또한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한 책과의 만남(코르시카에서는 플로베르의 [세 가지 이야기]), 나폴레옹의 탄생지 코르시카에서 마주한 예측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죽음을 경험하고 애도를 표하는 방식에 대한 견문과 사유, 죽음에 대한 모호한 공포, 미래를 향한 적응을 거부하는 멜랑콜리,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길을 잃은 (사냥꾼 그라쿠스를 떠올리게 하는) 배 한 척, 폐허를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자라는 어린이들…… 이 라이트모티프들은 제발트 고유의 목소리와 울림을 고스란히 선사한다.
에세이스트, 문학비평가, 동시대 문학 독자로서의 면모:
한트케, 바이스, 아메리, 클루게, 나보코프, 채트윈 등
‘그’를 가리키며 ‘나’를 해명하다
하지만 한국 독자들에게 [캄포 산토]의 진짜 매력은 어쩌면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이 책 후반부에서는 제발트의 ‘창작’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면서도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에세이 세계가 집필 연도순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물론 제발트가 비평가적 시선을 발휘한 [공중전과 문학]이 소개되기는 했지만, 1988년 시작된 ‘창작’의 시기 이전에 20년 가까이 독문학자와 비평가로서 써온 글들이 전방위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프레트 되블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제발트는, 영국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발표하며 독문학자로 활동했다. 그의 비평적 글쓰기는 이른바 ‘창작’ 시기에도 멈추지 않았다. 시론(詩論)의 주제는 1975년 썼던 페터 한트케의 언어극 <카스파르>를 시작으로, 전후 문학의 경향을 비판적으로 진단한 호명한 노사크와 카자크, 알렉산더 클루게, 귄터 그라스와 볼프강 힐데스하이머, 페터 바이스, 장 아메리, 시간의 흐름에도 바래지 않을 ‘문학’을 그리며 조명한 에른스트 헤르베크, 카프카, 나보코프, 브루스 채트윈, 자신의 글쓰기의 분기점이 되어준 화가 얀 폐터 트리프 등으로 이어진다. 특정 작가들에 대한 인상적인 스케치를 선보이는 이 에세이들은 같이 놓고 보면 한 편의 연작처럼 느껴질 정도로 유사한 주제를 다룬다. 모두가 제발트 특유의 멜랑콜리적 소묘를 통해 죽음, 망명, 우울, 애도, 기억의 문제와 씨름하는 작가들로 새롭게 도드라진다.
이런 에세이들을 통해 우리는 제발트가 뛰어난 작가이기 이전에 얼마나 예리한 독자이자 비평가였는지, 또 그의 작품이 이런 독서 및 비평 경험에 얼마나 많이 빚지고 있는지 살필 수 있다. 열네 편의 에세이에서 드러나는바, 제발트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누구보다도 고집스럽게 지킨 작가였다. 반복하면, 그의 관심은 독일의 과거사를 위시하여 끝없이 반복되는 폭력과 파괴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관심, 파국의 인간사를 자연사와 불가분의 역사로 서술하려는 태도, 파국의 재현이 떠안아야 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고민, 기억과 애도의 불가능성에 맞선 고통스러운 투쟁 등이었다.
한편 뚜렷한 변화도 느껴진다. 바로 문체의 변화다. 아카데미 안에서 글쓰기를 훈련받으며 그가 써야 했던 글은 저자를 지우고 각주를 촘촘하게 달아 전거를 내세운 학술 논문이었다. 그러나 25년여의 시간이 흐르며 제발트는 우리가 그의 다른 작품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그의 특유의 이야기 방식과 어조를 찾아간다. 아마도 그는 어느 때부터인가 서술의 객관성이라는 미명하에 ‘나’를 최대한 지워야 하는 아카데미의 글쓰기를 갑갑하게 느낀 듯하다. 그에게는 어떠한 역사적 사실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주관적 경험과 무관할 수가 없는 것인데, 기존의 역사학이나 논픽션 서술방식으로는 이러한 ‘연루’를 드러내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문학의 시작점에는 자신과 동떨어져 보이는 역사적 사실이 실은 자신과 얼마나 가까이 얽혀 있는지를 발견하고 자각하는 현기증적 체험이 있다. 이것은 자신의 무지와 무감함이 이 모든 역사적 폭력의 원인이라도 되는 양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제발트의 염결한 역사의식에서 배태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 글쓰기는 그가 오랜 친구인 화가 얀 페터 트리프에게 배웠다는 방법, “얼핏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사물들을 정물화 스타일로 그물망처럼 엮는 방식”의 탐구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현미경과 같은 정밀한 관찰력도 필요하지만 멀리서 두루 조망하는 조감법도 연마해야 한다. 그래서 제발트가 모범으로 삼은 작가들은 이른바 ‘산문의 공중부양술’에 한 번쯤은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 공중부양술의 힘으로 공중으로 떠올라 현실에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시선들을 훔쳐낸다. 그것은 육신의 짐으로부터 해방된 혼들의 시선이기도 하고, 세상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인간의 시선이기도 하며, 세상의 불의를 묵묵히 내려다보는 누군가의 초월적인 시선이기도 하다. 나아가 말년에 이르면 에세이스트 제발트는 더이상 문학 작가 제발트와 구분되지 않는다. 결국 제발트는 일찍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던, “나의 매체는 소설이 아니라 산문이다”라는 신념을 글쓰기 안에서 실천해낸 것이다.
*
제발트가 독자에게 남긴 마지막 문학, 때이르게 끝나버린 작가의 삶이 남긴 마지막 작품이자 영원히 미완으로 남은 세계. [캄포 산토]는 이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며, 읽는 내내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비애로 가라앉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인사는 우리가 죽은 이와 이별하는 방법, 그 외면할 수 없는 삶의 한 면을 고요히 마주할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 손을 기꺼이 잡을 때 그가 꿈꾼 ‘공중으로 떠오르듯 가벼워지는’ 문학 경험이 비로소 실현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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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아무리 격한 심리적 발작을 일으킨 사람이라도 그 내면 깊은 곳 어디선가는 자신이 말 그대로 자기 몸에 쓰인 연극에 출연한 것일 뿐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캄포 산토」)
화장터 장례식에서 포차를 타고 화장소로 들어가는 관을 보면, 누군들 우리가 고인과 이별하는 방식이 대놓고 초라하며 조급하기 이를 데 없다고 생각지 않겠는가. 우리가 죽은 자에게 내주는 자리는 점점 더 협소해지고 있으며 몇 년이 지나면 그 자리조차 없어지는 일이 빈번해지리라. (「캄포 산토」)
에세이
사물들은 그저 우리에게 더 잘 파악되기 위해서 이름을 갖는 것이 아닌가. 마치 우리가 현실에서 뽑아낸 지도의 빈 곳들이 정신의 식민제국 확대라는 목적하에 사라져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생소, 통합, 위기―페터 한트케의 연극 <카스파르>에 대하여」)
생존자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은 어느 밤이었다. “문득 한 사람이 잠꼬대를 했다. 아무도 그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두 불안해져서 불가에서 일어나 떠났다. 그러고는 겁을 먹은 채 차디찬 어둠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그 꿈꾸는 자에게 발길질을 했다. 그때 그자가 깨어났다. ‘꿈을 꿨습니다.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털어놔야겠어요. 난 우리 뒤에 있는 저기 저 속에 있었어요.’ 그는 노래를 불렀다. 불길이 사그러들었다. 여자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말해야겠어요, 우리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자 남자들이 모여 숙덕댔다. ‘그가 꿈꾼 대로 된다면 우린 얼어죽을 거요. 저자를 때려죽입시다!’ 그들은 그자를 때려죽였다. 그때 불이 다시 살아났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역사와 자연사 사이―총체적 파괴를 다룬 문학 서술에 대하여」)
공중전의 전략은 가공할 만한 복잡성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중략) 클루게가 작전 수립자의 관점에서 주목한 이 모든 측면은, 이 파괴 계획에 엄청나게 많은 두뇌와 노동력과 자본이 투입되었으며 그만큼 축적된 잠재력의 압박하에서 계획은 결국 반드시 완수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역사와 자연사 사이―총체적 파괴를 다룬 문학 서술에 대하여」)
착한 독일 남자가 폴란드 여자 또는 유대인 여자와 ‘만나는’ 연애담으로 포장된 수많은 1950년대 문학에서 부담스러운 과거는 대부분 감정적이라기보다 감상적으로 ‘청산됐으며’ 동시에 (중략) 파시즘 체제의 희생자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회피하고자 절박하게 노력했고 결국 성공했다. (「애도의 구축―귄터 그라스와 볼프강 힐데스하이머」)
어떻게 보면 거의 기질적으로 타고났다 할 수 있을 문인들의 이런 격한 탐구 충동에도 불구하고 “그때 우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인종에게 제물로 바칠 예정이었던 실제 인간들은 (중략) 우리의 감각적 지각에 아직 포착되지 않았다.” 그라스가 『달팽이의 일기』에서 부족한 부분을 어느 정도 메우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텔아비브에 사는 역사가의 노고 덕분이고, 이는 오늘날의 문학이 자력으로는 더이상 진리를 창작하지 못함을 다시금 명명백백 보여준다. (「애도의 구축―귄터 그라스와 볼프강 힐데스하이머」)
우리의 전후문학에서 조용한 영웅의 인생을 영위하는 선량하고 결백한 독일인들이 실제로 독자에게 넌지시 암시되는 그 방식으로 존재했는가의 여부는 객관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선한 독일인들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뵐의 문학에서 확인 가능하듯이, “리비우의 믿음 없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성聖 금요일의 주기도문을 외는 것 이상으로 한 일이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 더 중요하다. (「애도의 구축―귄터 그라스와 볼프강 힐데스하이머」)
생각할 수 있는 온갖 형벌을 환상적으로 상상하는 일은 엄격한 도덕주의자 페터 바이스에게 일종의 예비교육 역할을 했다. 절단과 훼손 행위는 기억이라는 정언명령을 구체화한 대응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 행위들은 언제나 존재하는 탓에?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영적 평온과 질서의 문지기라 불렀던?능동적 망각에 확실히 제동을 걸 수 있다. 따라서 바이스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으면 문학 작업에 착수하여 연옥으로 향한다. (「통회―페터 바이스 작품에 나타난 기억과 잔혹에 대하여」)
그가 당한 피해는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점, 이것이 바로 피해자의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상태를 말해준다. 그런 상태에서도 역사, 특히 가혹한 폭력이라는 역사의 원칙은 계속 작동한다. 한번 피해자가 되면 영원히 피해자로 남는다. 장 아메리는 이렇게 쓴다. “나는 그후 이십이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양팔이 뒤로 꺾여 공중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아메리도 알았겠지만, 어떤 식의 법적 판결과 보상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에 대응하는 정동은 침묵뿐이다. 기껏해야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뿐인 파시스트 정권 이후 세대가 피해자들의 자리를 찬탈하는 상황에 맞서 아메리는 위협적으로 강요받았던 침묵을 깨뜨리고자 했다. (「밤새의 눈으로―장 아메리에 대하여」)
죽음을 경험했는데도 그 죽음을 넘어 연장되어버린 실존의 중심에 자리한 감정은 죄책감, 저 생존의 죄책감이다. 죄책감은 니덜랜드가 죽음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지닌 가장 무거운 심리적 부담감이라고 진단한 감정이다. (중략) 생존자들이 그런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은 가장 섬뜩한 아이러니다. 살아남은 희생자들은 “압도당하고 위축됐다는 느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만성적인 “개인적 불편감, 우울증 상태와 무감각적 위축 상태”로 고통받으며, “가장 처절한 형태로 죽음을 마주하면서 얻은” 지워질 수 없는 “심리적 상흔”을 내면에 깊이 새기고 다닌다. (「밤새의 눈으로―장 아메리에 대하여」)
내가 아는 한 나보코프가 유령학만큼 열중했던 것은 없다. 그가 나방과 나비 연구에 열정을 바쳤음은 그보다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유령학에 비하면 곁가지에 불과했다. 어찌됐든 나보코프 산문 중 가장 빛나는 대목 상당수는, 우리의 세상만사가 어떤 분류표에도 아직 기재되지 않은 외부의 종種에게 관찰당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의 밀사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연극에 어쩌다 한 번씩 객연으로 출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인상을 자아낸다. 나보코프가 추측하건대 그들이 우리에게 그렇듯이 우리 또한 그들에게 출신과 성격이 불분명한 덧없고 투명한 존재로 비칠 것이다. 그런 그들을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바로 꿈속이며, 꿈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생전 한 번도 들러본 적 없는 곳에 간혹 출몰한다. (「꿈의 직물―나보코프에 대한 촌평」)
인생은, 운명이 사람을 말 대신 잡고 두는, 밤과 낮이 격자무늬를 이루는 체스판이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움직여 잡고 죽이고, 하나씩 하나씩 상자로 돌려보낸다. (「꿈의 직물―나보코프에 대한 촌평」)
카프카의 일기는 마치 영화관에서처럼 일상적인 삶이 우리 눈앞에서 무게 없는 이미지들로 분해되는 그런 경험담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그는 지금 승강장에 서서 배우 플로라 클루크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략)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편집된 이 일기장의 메모는 평생의 드라마를 아우르고 있다─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별의 고통, 죽음으로의 침하, 행복을 도둑맞은 자의 귀환. (「영화관에 간 카프카」)
잘 알려져 있다시피 카프카는 모든 유토피아를 불신했다. 그는 생을 마감하기 얼마 전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나안에서 추방되어 사십 년간 내쫓겨 있었으며, 이따금 자신을 원했던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수상쩍었고, 자신은 그저 물이 바다로 가는 것처럼 고독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치 않았노라고. 실제로 말년의 사진 속 카프카처럼 그토록 혼자로 보이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영화관에 간 카프카」)
인간과 고등어의 삶과 죽음의 관계는 우리가 예감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것이리라. 나는 첫 낚싯줄을 끌어올릴 때 그랑빌의 판화 작품을 생각했다. 그 그림에서 슈미제트, 넥타이, 연미복을 차려입은 대여섯 마리의 물고기들은 잘 차려진 식탁에 앉아 비정하게도 동족들을 막 먹어치우기 일보직전이다. 그것들이 우리 중 누군가를 먹으려 했다면 조금은 덜 끔찍했을까. 아마도 그래서일까, 물고기 꿈은 죽음을 불러온다 하지 않던가. (「스콤베르 스콤브루스 또는 흔하디흔한 고등어―얀 페터 트리프의 그림에 대하여」)
일종의 물신적인 소유욕은 채취와 수집벽의 특징이며, 발견된 파편들을 신비롭고 의미심장한 기억으로 변형시킨다. 그 기억은 살아 있는 존재인 우리를 배제시키는 어떤 것들을 우리에게 연상시킨다. 이것은 작가들이 사용하는 수법의 여러 층위에서 가장 기저에 있는 것일 듯싶다. (「적갈색 가죽 조각의 비밀―브루스 채트윈에게 다가서며」)
글쓰기의 형식은 많고 많다. 하지만 오직 문학적인 글쓰기에서만이 사실을 등록하고 탐구하는 것을 넘어 재건하려는 노력이 그 관건으로 대두한다. (「재건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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