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멈춘 시대, 다시 떠날 그날까지 간직하고 싶은 길 위의 이야기
세계 곳곳을 맨몸으로 걸으면서 삶의 풍경을 수집해온 정수현의 여행에세이. 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언제가 여행을 기약하고 있다면 되새겨 봐야할 이야기들 - 정수현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풍경 이면에 스민 삶의 아픔들을 느끼며 스페인 통치하의 잉카, 이국의 땅에서 안중근, 윤동주가 걸었던 길을 걷는다. 히말라야에서 유럽, 남미까지 그의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길과 삶, 역사가 어우러져 마음속에 스미는 풍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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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비추어 보다
파도 [on the road] . . . 24
이과수는 마침표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 . . 26
물들인다는 것에 대하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 . 30
도움닫기 [on the road] . . . 34
화산에서의 새날 다짐 [인도네시아 이젠화산] . . . 36
고흐, 행복한 사람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 . . . 42
체 게바라의 뒷모습 [쿠바 아바나, 산타클라라] . . . 46
라 보카의 B급 댄서에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 . 50
비추어 보다 [볼리비아 우유니] . . . 54
초심자의 행운 [요르단 페트라] . . . 58
한 끗 차이 [터키 이스탄불] . . . 66
찍다, 지우다, 남기다 [on the road] . . . 72
2장. 그리움의 시간
서울 4르 8063 [볼리비아 우유니] . . . 78
부처의 등뼈 [인도 부다가야] . . . 82
아야 소피아를 파괴하지 않은 까닭은 [터키 이스탄불]. . . 88
LA 목욕탕에서 그들을 보았다 [미국 LA] . . . 94
말은 저렇게 해야 하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 로벤섬] . . . 100
꼬마 탁발승 [캄보디아 시엠립] . . . 104
소주 한 잔 생각나던 마추픽추 [페루 쿠스코, 마추픽추] . . . 108
그리움의 시간, 말레꼰 [쿠바 아바나] . . . 114
쿠바의 밤하늘엔 유재하의 노래가 흐르고 [쿠바 쁠라야히론]. . . 116
몽골의 밤, 어둠으로 새를 그리다 [몽골 테를지국립공원] . . . 120
갈색 마리아를 믿습니다 [멕시코 멕시코시티] . . . 124
역방향 기차에 앉아 [on the road]. . . 130
나미브 사막의 사리(舍利)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 . 188
한 편의 무성영화, 에토샤 사파리 [나미비아 에토샤국립공원]. . . 194
3장.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에
혼자가 아니야 [스웨덴 스톡홀름] . . . 138
나미브 사막의 사리(舍利)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 . . 142
한 편의 무성영화, 에토샤 사파리 [나미비아 에토샤국립공원] . . . 146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 [쿠바 꼬히마르] . . . 150
야스쿠니의 가을풍경 [일본 도쿄] . . . 156
영웅의 자리 [중국 하얼빈]. . . 160
뒤집어야 할 타이밍 [중국 시안] . . . 166
설산기행1 입산(入山) [네팔 안나푸르나트레킹] . . . 170
설산기행2 그냥 걸어라 [네팔 안나푸르나트레킹] . . . 176
설산기행3 인생은 苦다, Go다 [네팔 안나푸르나트레킹] . . . 182
설산기행4 봉우리 [네팔 안나푸르나트레킹] . . . 186
그것만이 나의 오로라 [캐나다 옐로나이프] . . . 190
조르바 [on the road]. . . 198
숟가락 [라오스 루앙프라방]. . . 202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에 [이집트, 프랑스, 영국, 그리스] . . . 206
4장. 일몰처럼 아주 천천히
버스킹 리듬은 유채색 향기로 피어나니 [on the road] . . . 216
No problem [인도 바라나시] . . . 220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페루 와카치나사막] . . . 226
어린 동주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중국 용정] . . . 232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면 지하철을 타세요 [러시아] . . 236
자화상 [on the road] . . . 244
앙코르 사원에서 [캄보디아 시엠립] . . . 248
패밀리의 탄생과 소멸 [네팔 룸비니, 포카라] . . . 252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 카파도키아 [터키 카파도키아] . . . 256
길 떠난 이를 향해 누군가는 손을 흔들어줘야지 [페루] . . . 262
꿈보다 깸이 먼저 [미국 뉴욕] . . . 268
람세스 미라는 마지막에 [이집트 카이로] . . . 272
일몰처럼 아주 천천히 [라오스 루앙프라방] . . . 278
비상의 법칙 [스위스 인터라켄] . . . 282
이스탄불의 어느 골목길에서 [터키 이스탄불] . . .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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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여전히 꿈을 꾼다]. 정수현의 산문집을 읽는다. 그가 쓰는 문장은 사물의 핵심을 투명하게 묘사해낸다. 세계 곳곳을 맨몸으로 걸으면서 생활 반경에 숨어있는 역사와 삶의 세목과 조우하면서 풍경을 수집한다. 길을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풍광이겠다. 그는 산문을 쓰면서 대상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길이 절벽으로 서고 길이 해변으로 눕고 길이 다시 하늘로 눕는 과정 속에서 그는 시인들의 시집을 펼쳐 읽는다. 그림과 풍경과 사물과 시를 아름다움의 영역에 가닿도록, 그는 길 위에서 미학적 인간으로 몸을 바꾼 듯하다. 행장을 꾸리고 걷는 길, 풍경들이 그의 몸을 통과할 때 생기는 궤적이 부유하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먼 곳을 동경하는 자들이여, 자유롭게 떠날 수가 있는 날을 기약하며, 그의 산문집을 곱씹어 읽어보자.
- 이병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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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을 꾸리고 걷는 길, 풍경들이 몸을 통과할 때 생기는 궤적이 부유하는 이미지들로 가득한 여행 에세이"
맨몸으로 길을 걸어온 한 여행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길에서 만난 범인들의 이야기와 도시와 사막의 과거와 현재가 펼쳐지고, 이제는 역사가 되어버린 인물들의 삶이 되살아난다. 그 길고 험난한 여정을 완주하며 내뱉은 "창 밖을 보는 일이 지치고 지겨워진다면 잠시 눈을 감아도 좋겠다"라는 고백처럼, 때로는 길에 몸을 맡기고 세계를 돌고 온, 길을 사랑했던 여행자의 발자취에는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들이 녹아있다. 독자들은 그가 걸으며 발견한 풍광들과 함께 걸으며 여행이 멈춤 시대에 또다른 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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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라론이 세상을 떠난 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아왔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퍼포먼스를 펼치며 그들은 계단을 더욱 다채롭게 물들여가고 있다. 원색의 색감이 뿜어내는 강렬한 에너지에 한번 취하고, 괴짜 예술가의 농담 같은 죽음에 한 번 더 취해 계단 주위를 서성거렸다.
휴식이든 도망이든 변화를 띄워 올리기 위해서는 달릴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하다.
아야 소피아 본당에는 그 유명한 '공존'이 있다. 돔 천장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 있고, 그 아래 양쪽으로 각각 알라와 선지자 마호메트를 의미하는 문양이 걸렸다. '대립하는 두 종교의 화해'라는 교훈적인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예술적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장면. 사실적인 묘사와 상징적인 기호가 어우러져 세상에 없는 새로운 아우라를 창조해내고 있다. 사람들은 공존의 비밀에 대한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스페인 통치하에서 잉카의 후예들은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1780년, 쿠스코 출신의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가 주축이 되어 농민봉기가 일어납니다. 초반에는 총독을 사로잡는 등 위세를 떨쳤지만 이듬해 진압당하고 맙니다. 콘도르칸키는 사지가 찢기는 참형을 당하여 쿠스코 광장에 효수되었습니다.
후안 디에고 콰우틀라토아친.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한지 얼마 안 된 원주민이었습니다. 1531년 겨울,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테페야크 산을 넘어가던 디에고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원주민의 언어로 '내가 비탄에 빠진 자들을 위로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이곳에 교회를 세우라고 했다지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 나는 '안중근! 이토! 빵!' 이런 파열음을 내뱉었고, 그는 양손을 들어 올려 단호하게 엑스(X)자를 그릴 뿐. 소란이 길어지자 영어를 할 줄 아는 다른 직원이 나왔고, 비로소 1번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어느덧 몸에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가만 보니 우리 복장이 가관이다. 긴팔 옷에 점퍼까지, 눈 쌓인 히말라야의 이미지만 생각하고 겨울복장으로 무장했던 것. 그런데 사방에는 노란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그랬다. 우리는 트레킹을 하는 거였다. 산정(山頂)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표범을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평소에 뒷산도 못 오르던 중년여성이 무탈하게 히말라야 트레킹을 소화하는 반면, 심폐지구력 뛰어난 마라톤 선수가 도중에 쓰러져 실려 내려가는 일이 발생하는 거란다. 아직까지 현대의학은 고산병의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고 진단법과 치료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4년부터 1973년 사이에 베트콩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미군은 라오스에도 폭탄을 쓸어 부었단다. 9년 동안, 24시간 8분마다 한번씩, 출근도장을 찍듯 투하한 폭탄은 모두 2억6천만 개. 육중한 쇳덩이를 모두 받아낸 숲과 들판은 말라 죽었고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음의 파편들을 떼어다가 숟가락을 만들었다나.
이집트 룩소르 신전 앞에는 하나의 오벨리스크*만 외로이 서있다. 처음에는 분명히 한 쌍이었을 텐데…… 잃어버린 짝꿍은 파괴되거나 약탈되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사연을 듣고 나니 황당하다. 19세기에 이집트 총독이 프랑스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로비 차원에서 프랑스 왕에게 선물했단다.
늦은 오후, 갠지스강의 일몰을 보기 위해 철수 씨의 나룻배를 타러갔다. 열두 살 때부터 25년째 뱃사공을 하고 있다는 철수 씨. 그는 오래전 이곳에 왔던 한국인 탐험가와의 인연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단다. '철수'는 그 탐험가가 붙여준 이름. 독학으로 배운 것치고 철수 씨의 한국어 실력은 괜찮았다.
'트로이도 함락되었고 로마도 함락되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함락되지 않았다.'
러시아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이 말은 도시를 만들고 지켜냈고, 또 지탱하며 살아가는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돌려야할 헌사일 것입니다.
혹자는 이제 자유여행의 시대가 끝났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이 우리를 떠났습니다'로 시작하는 어느 항공사의 광고처럼, 떠나간 것들은 반드시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을 믿는다. 길을 나서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떠난다는 것은 돌아온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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